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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서평 글쓰기 요령

一夜九渡河記’(박지원) 의 글쓰기 전략

by 안규수 2016. 12. 13.

이 글은 수필 평론 두 번째 시간 중에 다룬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을 읽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일야구도하기>는 번역된 내용이 책마다 조금씩 다른데. 이 글은 이대규의 <<수필의 해석>>에 실린 글을 읽고 쓴 것 입니다.

 

‘하룻밤에 아홉 번 건넌 강 一夜九渡河記(박지원)

- 독자와의 내적 대화를 통한 글쓰기 전략 -

                                                                  지은희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실체가 모호한 이미지와 표상을 언어로 환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는 문법적인 문제에서부터 수사학적인 방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은 작가 자신에 대한 만족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글이 남에게 읽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되도록이면 본인의 글이 어떤 방해나 오해 없이 독자에게 이해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글이든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써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글이란 작가의 것이기 보다는 독자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글쓰기는 작가 중심이기보다는 독자 중심이어야 한다는 눈으로 볼 때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는 상당히 독자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박지원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내면에 상정한 독자와 끊임없는 상상적 대화를 통해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주장을 내세우는데 있어서 독자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타협해 나간다는 말이 아니다. 독자가 어떤 점에 의문을 가질 것이고, 어느 시점에 반박할 것이며, 무엇 때문에 미심쩍어 하는지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가 어떤 생각과 반응을 보일지 미리 알고 있기에 수긍할 수 있도록 주장과 근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글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글쓰기 전략은 글의 내용을 결속력 있게 만들면서 작가의 주장을 더욱 강하게 관철시키고 있다.

 

  이 글은 도입, 전개, 결말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아래는 편의상 10단락으로 나누어 요약한 것이다.

도입

1

강물 소리는 여러 가지로 들리는 듯하다.

전개

2

강물 소리가 다양하게 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이다.

시냇물 소리도 달리 들리는 것은 가슴에 품은 느낌에 따라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3

나는 어제 하룻밤 사이에 같은 강 하나를 아홉 번이나 건넜다.

4

5

사람들은 낮에 강을 건널 때는 보이는 물이 무서워 소리를 듣지 못하고, 밤에 강을 건널 때는 흐르는 물을 보지 못하니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강물을 건널 때 느끼는 두려움도 보고 듣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6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이는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귀와 눈만을 믿는 이는 잘못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판단하여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7

내가 강을 건너는데 마음을 다스리자 귀에서 강물 소리가 그쳐 강을 아홉 번이나 건너면서도 두렵지 않았다.

8

우 임금도 강을 건너는데 용이 나타났어도 마음을 다스려 아무렇지도 않았다.

결말

9

소리와 모양은 모두 바깥에 있다. 바깥에 있는 것이 늘 눈과 귀에 영향을 주어 바르게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물보다 더 위험한 인생의 길을 건널 적에, 바르게 보고 듣지 못하여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10

산 속으로 들어가 앞 내의 물소리를 다시 들으면서, 나의 깨달음이 옳은지 시험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제 몸을 보호하는 데 약삭빠르고, 잘못 보고 들으면서도, 제가 똑똑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충고하겠다.


 

  우선 처음 단락은 당시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 흐르는 소리에 대해 사실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을 나열하면서 시작한다. 여기에서 독자는 물소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박지원의 말대로 과연 물 흐르는 소리가 여러 가지로 들린다고 동감할 것이다.

 

  다음 단락에서 박지원은 반론을 제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자에게 이르기를 강물 소리가 다양하게 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고 한다. 평소에 박지원과 같은 생각을 한 독자라면 박수를 쳐 주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갑자기 당황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원은 그런 독자를 위해 자신의 집 가까이에 있는 시냇물이 마음 상태에 따라 그 소리가 다르게 들리더란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반론에 대한 근거이다.

 

  셋째 단락에서 박지원은 자신의 경험담을 듣고도 계속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독자를 위해 또 다른 경험담을 넌즈시 건넨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강을 아홉 번 건넌 이야기를 화두로 던지기는 하지만 아무 두려움 없이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곧바로 하지는 않는다. 박지원은 본인의 경험담만으로는 독자를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알려준다. 사람들은 낮에 강을 건널 때는 물이 무서워 소리듣지 못하고, 밤에는 흐르는 물을 보지 못해 물소리가 무섭다고 하니 두려움는 마음에 있는 것이라 말한다. 박지원은 이 정도면 독자가 자신의 말을 어느 정도 수용할 것이라 여긴 듯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박지원은 여섯째 단락에서 자신의 주장을 다시 강조한다. 그러고 나서야 마음을 다스리니 강을 아홉 번 건너도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박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미심쩍어 하는 독자를 위해 좀 더 권위 있는 우 임금의 예를 들어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 임금도 그러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박지원은 본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독자에게 전달되었다고 판단되자 그제서야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비로소 꺼낸다. 바로‘강물보다 더 위험한 인생의 길을 건널 적에, 바르게 보고 듣지 못하여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 말한다. 이 말에 지금까지 박지원의 논리 정연한 설득에 이끌려 고개를 끄덕이던 독자는 다시 한번 당황한다. 물소리와 강을 건너는 두려움이 마음에 달려있다는 이야기가 결국은 인생의 길에 대한 것임을 알고 깨달음을 얻는 순간인 것이다. 처음부터 박지원이 인생의 길을 건널 때 정신 차리고 똑바로 가야 한다고 했다면 독자는 그다지 흥미 있게 글을 읽어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런 이야기라면 선인들이 지금까지 말해 왔던 교훈 중 하나라 여기고 진정한 깨달음이 아닌 추상적 관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박지원은 가상의 독자를 떠올리며 그들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주장과 근거를 적절히 배열하여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 것이다. 그는 독자와의 계속적인 상상적 대화를 통해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자신의 경험, 타인의 행동을 본 것과 들은 것, 그리고 권위적인 사례 등을 통한 귀납적인 접근 방식으로 이끌어 가면서 설득력을 높인다. 박지원이 말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주제를 지닌 글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이렇듯 독자가 반론과 의문을 제기할 것에 맞서 탄탄한 구조 위에 내용을 얹은 텍스트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박지원은 마지막에 아직도 못 미더워하는 독자를 위해 말한다. 내가 다시 확인해 볼 것이고, 시험결과가 나의 깨달음과 맞으면 이제 마음 놓고 소인배들을 충고 하겠다고 한다. 박지원 특유의 재치와 해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박지원은 글을 끝내면서 독자에게 한 마디 내던지는 듯하다.

 

 ‘어떤가, 지금까지 내 말이 그럴듯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자네도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네. 그런데 자네도 나처럼 혼내주고 싶은 소인배가 주변에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좀 뜨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