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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돌봄의 기술!

by 안규수 2019. 10. 13.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이번 주 이른 하노이 출장으로 오랜만에 호치민에서 맞이하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0^

 

사람과 세상은

나에게

사회적 죽음과 

육신의 죽음을 줄 수 있지만,

 

나에게서 영원한 생명(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빼앗을 수 없음을 오늘도 기억하며~ 

 

사람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과 세상을 긍휼히 여기며,  

기쁨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김유비 목사님의 <돌봄의 기술> 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회사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크리스천이라 더 괴롭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처음부터 기대감이 없어서 실망할 것도 없지만 믿는 사람이 괴롭히면 너무 화가 납니다.
 
주변 사람들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았으면 해요. 
힘들게 하는 사람이 힘들게 합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잘해주거나 별문제 없을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정의에는 논리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이는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열을 봐야 열을 압니다. 
급하게 결론 내리면 잘못된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가 무엇을 믿느냐, 얼마나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 등 따져볼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어도 마음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 모두를 믿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어요.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으로 구분하면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집니다. 
의인과 죄인이란 개념은 성경 안에서는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지만, 실제로는 우리 안에 함께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인이며 죄인입니다. 동시에 죄인이며 의인입니다. 
마음속에 치열한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댈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삶의 한순간이라도 그분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죄인을 보고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는 처음부터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일을 잘하세요. 예수님이 맡기신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성을 다해 맡은 일을 하면 그것이 곧 예배입니다. 물론 쉽지 않지만요.
 
“목사라 사회생활 안 해봐서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교회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에는 믿는 사람만 있는데 목사는 목회가 왜 이리 힘들다고 할까요? 
성도는 성도대로 왜 시험에 들까요? 
다 사람 때문입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삽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빛을 잃지 마세요. 
어두울수록 더욱 밝게 비춰주세요. 
세상 한가운데서 포기하지 않고 빛으로 살아줘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돌봄의 기술! 김유비 / 규장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에베소서 4장 32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 빌립보서 1장 6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2장 2절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 한 분만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시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실망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죄인 된 나를 사랑하시고 참으시는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헌신’에 대한 설교말씀을 들은 한 성도가 예배시간이 끝난 뒤 목사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도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열심과 헌신의 차이가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은 잠시 자리를 떠나 종이와 펜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종이에다가 이렇게 적기 시작했습니다.
 
‘위임장.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위임할 것을 나는 선언합니다.’
 
“이 계약서에 날짜와 서명을 적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헌신입니다. 
열심은 내가 내킬 때만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지만 헌신은 언제나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헌신을 하겠다고 사인은 하지만 날짜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성도들은 오늘부터 헌신하겠다고 날짜는 적었지만 서명은 또 하지 않습니다. 
저 계약서에 날짜와 서명을 모두 적는 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구원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뒤에 어떤 결심을 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계약서에 날짜와 서명을 모두 적으셨습니까? 
적으셨다면 충실히 계약을 이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나와의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드린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입니다.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귀한 은혜를 부어주신 주님을 위해 기꺼이 감사함으로 헌신하십시오. 아멘!!
 
주님, 내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믿음을 주소서.
하나님께 내 삶의 전부를, 오늘 위임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