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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 김선굉(1952 ~)

by 안규수 2014. 6. 6.



내 고향 청기 마을에는 참 이쁜 동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참말로 이쁘게 흘러가는 시냇물입니다.

애가 태어나기 여러 해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젊은 어머니는 동천에 가서 빨래를 했습니다.

얼음이 엷게 언 시냇가에 자리를 잡고 툭툭 얼음을 깨면,

그 아래로 맑고 차가운 냇물이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시린 손을 달래며 서둘러 빨래를 하고 일어서려는데,

무슨 일인지 일어서지지 않았습니다.

빨래를 하는 사이 물에 잠긴 치마가 얼어붙은 것이었습니다.

방망이로 얼음을 툭툭 깨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치맛자락에 붙은 얼음조각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겨울 하늘처럼 맑고 고와서,

조금 빨리 걸으면서 그 소리를 들어도 보았습니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그 소리를 또 듣고 싶어서,

일부러 빨랫감을 만들어 여러 번 냇가로 나가

일부러 치마를 물에 담그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조금 담그어 작은 얼음 조각을 만들고,

어떤 때는 많이 담그어 굵은 얼음 조각을 만들어,

얼음 부딪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온 날짜가 참 많았습니다.

그해 봄 동천 건너편 청일봉 기슭 참꽃들이 

유난히 일찍 피어 붉고 뜨겁게 타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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