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 정승윤
고양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배경이 된 우리 가게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 가게는 원래 장모님이 사시던 집인데 지금은 개조하여 가게로 쓰고 있다. 그래서 돌담도 있고 마당도 있다. 우리 부부는 아침이면 가게에 출근하고 해가 지면 퇴근한다. 그래서 밤에 고양이들이 가게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수가 없다.
길고양이 '나비'가 가게 항아리 뒤편에 새끼를 낳았다. 처음에 일곱 마리를 낳았는데 한 마리는 이미 죽어 있었다. 나비는 우리가 새끼들을 위하여 담요를 깔아주는 걸 돌담 위에서 지켜보고 있더니 다음날 새끼들을 감쪽같이 감춰버렸다.
우리 부부가 그들을 거의 잊을 무렵 나비가 새끼들을 거느리고 가게에 다시 나타났다. 새끼들은 아직 숫기가 없어서 숨기 바빴고, 그래서 우리는 몇 번이고 그 수를 고쳐 세야만 했었다. 그놈이 그놈 같아서 한참 애를 먹었다. 최종 확인한 수는 다섯이었다. 그 때까지 또 한 마리가 죽은 것이리라.
조금 익숙해지자 놈들은 우리 마당에서 뛰고 구르고 서로 덮치며 장난을 치더니 돌담 위까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처럼 빠르고 탄력이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는 아내의 눈은 행복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몇 차례 길고양이를 겪어본 우리는 그 행복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할 거라는 것을 어쩌면 미리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어미 나비는 떠나버렸고 새끼들은 곧 풀이 죽었다. 그 꼴이 가여워 아내는 상자 안에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들은 그 상자 안에 이리저리 엉켜서 하나의 완성체를 이루었다. 가끔 들여다보면 그들은 어둠 속에서 모두 함께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거기 열 개의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 애들을 어느 정도 구별하게 되자 우리는 그 애들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애들의 코앞에 참치며 우유를 드밀어주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었다
어느날부터인지 새끼들의 행동이 점점 굼떠졌다. 처음엔 까마귀만 날아도 숨던 놈들이 이젠 사람이 지나가도 데크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은 여전히 피했다. 손을 내밀면 귀찮다는 듯이 마지못해 도망을 갔다. 어미가 있을 땐 어미 옆에서 젖도 빨고 먹이도 잘 먹던 놈들이 현저히 식욕이 줄어든 것이다.
내가 육지 나가 있는 동안에 아내는 전화로 ‘행운이’와 ‘행복이’의 죽음을 알려왔다. 돌아와서 내가 그 둘의 시체를 공터의 돌담 가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꼼짝도 않고 있던 ‘희망이’와 '소망이'는 동물보호센터에서 거두어갔다.
마지막 혼자 남은 '기쁨이’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왜 사라졌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까마귀들이 잎 진 느티나무로 날아들었다. 나무의 늑골 위에 앉은 까마귀들이 불길하게 울었고 고양이들은 마치 호롱불이 꺼지듯 하나하나 사라져 갔다. 온 하늘을 장엄하게 물들이던 노을도 또 하나의 큰 불처럼 순식간에 꺼지고 어둠이 왔다.
우리는 사라진 고양이를 기다리며 내내 먹이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나 혼자 가게에 들를 일이 있었다. 상자가 놓여 있는 구석에서 뭔가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후레쉬를 켜서 어둠 속을 살폈다. 기쁨이가 돌아와 어둠 속에서 먹이를 먹고 있었다. 생각같아선 기쁨이를 조용히 안아서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길고양이의 습성상 내 품에 순순히 안기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찾아온 기쁨이를 영영 놓칠까봐 두려웠다. 나는 되도록 기척을 내지 않고 조용히 돌아섰다. 그리고 내일 아침 우리 부부가 출근했을 때 기쁨이가 마당 위를 기쁘게 뛰어다니기를 신께 빌었다.
나는 가끔 기쁨이를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도 기쁨이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밤 기쁨이를 단 한 차례 다시 보낸 신의 의도에 대해 이것저것 궁리 중이다.
'다시 읽고 싶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 / 정승윤 (1) | 2023.12.09 |
---|---|
죽음 앞에서 / 정승윤 (1) | 2023.12.09 |
만월 / 정승윤 (1) | 2023.12.09 |
낮은 구름 / 정승윤 (0) | 2023.12.09 |
내 사랑 ‘엄지’ / 유선진 (1) | 2023.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