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68 고별 / 김상기 아내가 많이 아프다 눈 꼭 감고 참고 있다가 문득 혼잣말처럼 묻는다 '날 사랑해?' 나는 화들짝 놀라 대답한다 '그럼!사랑하고 말고!' 아내가 생전 하지 않던 청을 한다 '나 한 번 안아 줄래?' 나는 고꾸라지듯 아내를 안는다 목구멍 속으로 비명이 터진다 '여보! 제발 가지마!' 이윽고 아내.. 2014. 6. 11. 그해 겨울 / 김선굉(1952 ~) 내 고향 청기 마을에는 참 이쁜 동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참말로 이쁘게 흘러가는 시냇물입니다. 애가 태어나기 여러 해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젊은 어머니는 동천에 가서 빨래를 했습니다. 얼음이 엷게 언 시냇가에 자리를 잡고 툭툭 얼음을 깨면, 그 아래로 맑고 차가운 냇물이 흘러가는 .. 2014. 6. 6.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 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 2014. 6. 2. 고 향/백석 ‘고 향’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 2014. 5. 23. 이전 1 ··· 12 13 14 15 16 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