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오직 예수 믿음으로 살라

안규수 2016. 7. 7. 16:02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이른 새벽 

여러 현안으로 일찍 잠에서 깨어 기도하는 중

나에게 있는 여러가지 고민거리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0^

하나님을 더 가까이 찾고 만나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음을 느끼는 통로이기 때문이지요. 


문득,

내가 원하는 곳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늘 서 있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가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호치민은 이례적으로 이른 아침 큰 비로 하루를 시작하네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조상연님의 <도전! 성경 1000독> 이라는 책중에서 <당신의 진짜 능력은?>이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살면 복음이 움직이는 삶을 살 수 있다. 


성경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야 된다. 

말씀으로 사람이 거룩하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되는 적용은 

성도의 삶의 현장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성경 전체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는 것이고, 

환경의 어려운 시험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삶의 현장에 적용되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남기는 인생은 복된 인생이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는 산제사로 적용하면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바울은 많은 은사를 받은 선교사로, 선교 여행 중에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손수건이 병든 사람에게 닿기만 해도 질병이 나았다.  


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위해 세 번 기도했다. 

그러나 주님의 응답은 연약한 상태로 살아가라는 거였다. 

선교여행 중에 유두고를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그는 사람을 살린 간증보다 기도를 했음에도 

자신의 연약한 질병을 고침 받지 못한 은혜의 간증을 장황하게 말한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 해도 그런 그리스도의 능력은 떠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간증은 질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질병을 고친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가장 큰 능력으로 머물러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러 가장 강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혹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가 되는 걸 예수 잘 믿은 간증으로 여긴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수 안 믿고도 부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불신자들 중에는 신자보다 훨씬 더 큰 부자가 많다. 

또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고침 받은 것을 간증으로 말한다. 

그리고 부족한 몇 가지를 채움 받는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간증이 그리스도여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할지라도 예수를 잘 믿어 “아멘”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예수 믿고 부자 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성경은 가난하게 살라고도 부자로 살라고도 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 살라”라고 말한다. 

예수 잘 믿으면서 질병에 걸릴지라도 바울처럼 “아멘”하기를 말씀하고 있다. 

건강하게 살라는 것도, 질병에 걸려 고생하라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때로는 예수를 잘 믿는데도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를 잘 믿으면 부족한 것이 없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는 말씀처럼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그분으로 인해 

가난해도, 질병에 걸려도, 부족해도 

“아멘”하는 게 삶의 가장 큰 묵상이며 적용이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장 17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 고린도후서 13장 9절

진짜 능력은 내 안에 그리스도임을 깨닫습니다. 

주님, 늘 주님을 간구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하소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에서는

밤낮으로 고민하고 , 물어보고 ,

알아보며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믿음은요 ?

이 신앙이 정말 믿을만한 지 , 아니한 지

고민해 보셨습니까 ? 알아봤습니까 ?

찾고 또 찾아 봤습니까 ?


 믿음은 현실이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웃을 수 없는 상황에 웃음이 나옵니까 ?

기쁘지 않은 현실인데도 기쁨이 샘솟습니까 ?

가능성 없는 프로젝트에 소망이 보입니까 ?

다 안 된다 하는데도 된다고 믿어집니까 ?

믿음은 웃는 게 아니고 웃어지는 겁니다

기쁨은 기뻐하는 게 아니고 기뻐지는 겁니다

소망은 보는 게 아니고 보이는 겁니다


 나의 열심과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

믿음은 믿는 것이 아니고 믿어지는 겁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들의 경건생활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 ‘Grace to you’ 에 하루는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글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진화론의 급격한 전파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마저 

진화론을 전적으로 믿거나 창조론을 완전히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가 창조론을 믿지 않는 성도들에게 질문을 한 가지 하겠습니다. 

도대체 여러분은 성경을 어디서부터 믿으십니까? 

아담이 타락하고 원죄가 생겨난 창세기 3장부터 믿으십니까? 

아니면 노아의 홍수가 기록된 6장부터입니까? 

그것도 못 믿겠으면 바벨탑 사건이 등장하는 11장부터입니까? 

아니면 신약부터라도 믿으시겠습니까? 

세상의 지식에 성경을 맞추다 보면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성경의 기적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과학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부활 역시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이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한 점, 한 획도 거짓 없는 분명한 진리입니다. 

내 안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은 바로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 불변의 진리가 의심 없이 내 영혼 속에 뿌리내리도록 주님을 더욱 사모하며 신뢰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진화론을 믿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역사가 있게 하소서. 

성경의 모든 말씀이 분명한 진리임을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김장황,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