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교회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토저 목사님의 <하나님을 향한 열정> 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지난 세대에 복음주의 교회가 거둔 놀라운 진보들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한 가지 손실 때문에 내 마음이 착잡하다.
이 파괴적인 손실은 바로 ‘올바른 하나님 인식의 상실’이다.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그분을 경외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분을 우리의 친구이고,
우리의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 멋진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을 주기 원하는 분으로만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의 손실의 근본 원인은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히 1:3)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제국가가 아닌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왕이나 지도자의 등을 두드리며 “친구여!”라고 부를 수 있다.
‘위엄’(Majesty)이라는 개념은 이미 사라졌다.
특히 교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에스겔서를 통독한다면 매우 큰 유익을 얻을 것이다.
특히 무릎을 꿇고 읽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 옛 선지자의 책에는 두렵고 놀랍고 경외감 가득한 구절이 나온다.
기독교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의 빛나는 임재, 즉 쉐키나(Shekinah)가 그룹들의 날개 사이로부터 날아 제단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쉐키나는 그 제단으로부터 위로 올라서 문으로 가고,
날개소리를 내며 바깥뜰로 갔다가, 다시 산으로 갔다가, 결국 영광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어느 날, 이스라엘과 함께하던 이 쉐키나 영광이 사라졌다.
아마도 더 이상 그들을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위엄을 거두셨고,
쉐키나가 그분과 함께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오늘날의 교회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을까?
예배 중에 그분의 임재의 압도적인 위엄을 체험한 교회들이 얼마나 될까?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침묵만을 체험하고있는 것 같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놀라우신 성품을 찬양하고 기뻐하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
모든 시대마다 교회는 그분을 전했고, 그분께 기도했으며, 열국 중에서 그분을 선포했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높였다.
교회가 교회답게 행할 때에는 그분이 열국 중에서 높임을 받으셨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 때문에 교회는 이런 일에 싫증을 내게 되었다.
과거에는 하나님에 대한 품격 높은 고상한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재해석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우리의 하나님을 세상에 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나님 개념을 교회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세상은 친구나 파트너 같은 하나님, ‘나를 좋아하는 저 위에 계신 분’ 같은 하나님을 원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육신적 표현들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사용한다.
예를 들어 기도는 ‘하나님과 머리를 맞대고 은밀히 의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최고의 유명인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복음주의 세계가 잃어버린 아주 큰 것이 무엇인가?
다른 모든 손실들의 원인이 되는 한 가지 압도적인 비극적 손실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지극히 높으시고, 천지를 만드셨고, 우리 조상들이 경배했던 놀라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셨다.
그리고 그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친구처럼 지내면서
그분을 어떤 위원회의 위원장 정도로 대우하기 원하는 ‘절반만 구원받은 자들’의 하나님이다.
복음주의 교회는 ‘경건한 두려움’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사라지다보니 우리 조상들이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향한 경박함과 허물 없음’이 생겨났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 진정한 경배를 드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유일한 예배는
그분의 거룩한 성품과 본성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경외심과 경이감과 거룩한 두려움과 영적 기쁨을 잃어버렸다.
그분을 높이는, 그분에 대한 고상하고 아름다운 인식이 우리에게서 사라졌다.
내면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외형적인 것만을 얻었다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이 아닐까?
영적으로 오히려 나쁜 상태에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가 그런 나쁜 상태에 있기에 하나님의 능력의 새로운 나타남이 절박하게 요구된다고 나는 믿는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예레미야 2장 19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로마서 1장 21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호세아 6장 6절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역대상 16장 4장 28,29절
하나님의 거룩함과 존귀와 능력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모든 순간 하나님의 높으심과 지극히 크심을 의식하며 행하게 하시고,
잘못된 길을 떠나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제 마음 안에서 큰일을 행하소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적 기쁨을 회복해주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 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 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언제나 당신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훌륭한 조언자가 될 때도 있고, 가장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을 성공의 계단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 로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이 맡기는 일을 습관적으로 처리합니다.
당신이 하는 일의 50%는 내가 알아서 처리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꼭 붙어 있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을 유심히 보고 따라합니다.
나는 모든 성공자의 하인입니다.
그리고 실패자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은 성공, 또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나를 잘 훈련시키십시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평생 충실한 하인으로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멋대로 풀어준다면 당신은 평생 후회만 하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나의 이름은 바로 습관입니다.
성경의 훌륭한 인물들은 모두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 이른 아침에 하는 말씀의 묵상, 겸손과 정직,
이 런 것들은 나를 주님과 더 가까이 하게 하고, 신앙을 성공하게 하는 좋 은 습관들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좋은 습관으로 인생을 채워가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거룩한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소서!
신앙과 인생을 위한 좋은 습관 한 가지를 오늘 결심하십시오.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