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기도하지 않을 때 생기는 일들
안규수
2017. 1. 4. 10:04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연초를 맞아 분주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시지요?
하지만,
분주함 가운데서도
늘 기도하는 삶을 통해~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예배하는 삶을 사는 ~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송준기 목사님의 <기도하지 않을 때 생기는 일들> 이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들을 따라가 보면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바빠서 기도하지 않으면 소명의 확신이 떨어지게 되어 우선순위가 망가진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다(행 6:4).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기도와 말씀을 다른 바쁜 일들로 대체하게 되면 시간을 질이 아닌 양으로 다루게 되어버린다.
기도하지 않으면 거룩과 멀어진다.
기도 없는 사역은 동기가 사라진 행위가 되어 겉으로는 거룩해 보여도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들로 전락한다.
기도가 없는 인생은 말이 있어도 능력은 없다.
말뿐인 거룩이 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진다.
그분이 나를 떠나서가 아니라 내 편에서 관계가 소원한 것처럼 경험되기 시작한다.
마치 하나님을 피해서 어딘가에 숨을 수 있을 듯한 거리감을 가져다준다.
기도를 멈추면 심령이 예배와도 멀어지고 모든 거룩한 행위들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의지하게 된다.
기도를 통한 영적 호흡이 없는 곳에서는 숨막혀 하는 영혼의 발악이 세상의 지푸라기들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기도로 모든 것을 구해서 최선의 것을 얻게 되는 특권을 저버린 이상, 어떤 것을 의지해도 허망할 뿐이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기를 높이게 된다.
기도를 등한시하는 성도는 반드시 ‘나’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지 않는 한 시야는 말할 수 없이 좁아진다.
기도가 사라진 심령은 언제나 자기밖에 모르는 영적 어린아이가 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나타내게 된다.
성령의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그분과 대화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자아의 세속적 욕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를 떠난 성령의 사람은 영안을 잃고 삼손처럼 세상의 굴레에서 쳇바퀴를 돌리다 비참하게 복수를 외치게 된다(삿 16:21-28).
기도가 없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임한다.
고난 없는 영광은 가짜다.
죽음 없는 부활은 거짓이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
우리의 예수님은 새벽에도, 바쁜 중에도, 억지로라도, 습관을 가지고 기도하셨던 분이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도 늘 기도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줄 알고도 기도할 정도였다. 의인은 기도했다.
기도꾼은 용맹하다.
그들은 자아에 대해 죽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결정을 골방에서 먼저 진행한다.
골방 고향으로 들어가라. 사지에서 사기를 드높여라.
죽음의 그림자들 앞에서 무서워하지 말고, 천국의 그림자를 찾아 기도의 방석을 펼쳐라.
세상의 모든 바벨론 앞에서 기도의 뜻을 정하고 의미 없는 죽음으로부터 몸을 지켜라.
내일 일을 기도로 주께 맡겨라.
불안이 없고 염려가 없는 천국을 기도를 통해 짙게 경험하라.
세상을 두려워하는 간신이 되어 왕의 조서를 들고 골방 앞을 기웃거리지 마라.
오히려 기도의 자리를 통해 하늘나라를 몸으로 살며 세상을 통치하라.
죽음이 결정된 삶을 살아라.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늘 기도하셨다.
하나님이신 분이 그러셨다면 우리 같은 죄인들은 더욱 기도해야 한다.
의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다.
성도의 기도도 의인의 기도이다(약 5:16).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응답을 받는다.
그분을 따를 때 칭의를 얻는다.
의인 뒤에 믿음의 줄을 서면 하나님께 의인 취급을 받는다.
예수님을 따라가라. 그분을 따라 기도하라.
그분이 우리에게 기도를 명령하셨음을 기억하며 기도의 자리에서 하늘을 살아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6:9)
- 송준기 <무서워마라> 중에서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 마태복음 26장 41절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다니엘 6장 10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 사도행전 6장 4절
주님, 기도하지 않을 때 거룩과 멀어지게 되고 자아에 빠져 두려움을 느끼게 됨을 깨닫습니다.
육체를 연단시켜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과 교제하며 세상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주님이 사랑하시고 이뻐하시는 손은
항상 부드럽고 깨끗하기만 한 손이 아닐 것입니다.
오직 주님은 자기와 같은 손을 가진 사람을 찾으시며
그런 손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편 24:3~5>
주님의 성산에 오르는 사람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그래서 남을 위해서만 살았던
그런 손을 가진 사람이 오르게 될것입니다.
주여, 저를 주님의 손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눅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 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주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모이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임마누엘 감리교회에서는
매주 수요일 저녁 성경공부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백인 청년이 어느 날 이 시간에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성경 을 공부하기 위해서 왔다며 가만히 공부를 하던 그는 끝날 때쯤 갑자기 총을 꺼내 사람들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백인우월주의에 푹 빠져있던 21살의 이 남자는 이날 총 9명을 죽였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조금도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취재하러 온 카 메라를 향해 미소를 보이고, 인터뷰를 할 때도 흑인은 미국을 떠나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인들이 나에게 너무 친절하게 해줘 서 잠시 범행을 망설였다”고 말했습니다.
이 청년의 재판이 벌어지던 날 유족들은 영상을 통해 용서의 메시지 를 전했습니다.
“당신은 내 사랑하는 아들을 죽였습니다.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겼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기도합니다.”,
“다시는 엄마를 안을 수 없지만 당신을 용서합니다.”
유족들은 하나같이 범인을 용서한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사고가 난 바로 다음 주일 모든 사람들은 교회에 모여서 함께 손을 잡고 예배하며 용서의 마음을 나눴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와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용서와 평강이 있음을 오늘 이웃에게 보여주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말씀대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본문의 나온 용서가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용서임을 기억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