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눈물이 사람을 바꿉니다.
안규수
2017. 2. 3. 11:4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이곳 베트남은 공식적인 연휴는 끝났지만 어제 오늘 쉬는 기업과 휴가가 많아서인지
구정연휴의 분위기가 주말까지는 이어질 듯 합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유기성 목사님의 <화를 자주 내눈, 나>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우리 안에 임하신 주님 앞에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야 합니다.
두려워해야 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항상 주님 앞에서 말하듯이 해야 합니다.
어떻게 남을 함부로 비판하고 화를 낼 수 있습니까?
성격이 불같으신 장로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예배당에서 뛰어다니는 것을 보시고 그 아이를 붙잡아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어디 예배당에서 뛰어다니느냐!”
그런데 그날 이후로 그 아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을뿐더러
자라면서 교회를 비난하고 주변에 예수 믿는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장로님은 옳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타일렀다면 과연 그 아이가 실족하고 교회를 떠났을까요?
눈물이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잘했나 잘못했나 이것만 따지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옳고 그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배우자는 곧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배우자가 잘못했으면 자신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상대를 자신과 하나로 보지 않으면서 하는 모든 옳은 말은 틀린 말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잘못된 일이 있어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5절에 분명히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게 예수님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 속에서 티를 빼려 할 때, 죄지은 자를 돌로 칠 때, 반드시 지킬 일이 있습니다.
내 눈 속에 들보가 있고, 내가 더 큰 죄인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판을 해도 다릅니다.
나 역시 죄인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바로잡겠다고 화를 내거나 지적하거나 따지고 비판하듯이 말할 수 없습니다.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당신 잘못이지 나는 잘못한 게 없어.”
“나는 당신과 달라.”
“그래도 난 당신보다 나아.”
이런 태도로는 결코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없습니다.
눈물이 사람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께서도 성전에서 화를 내시고 채찍을 드시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정말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람과 짐승을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성전 상을 엎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왜 그것만 보십니까?
예수님은 그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당신의 죄로 삼으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옳고 그름만 따지고 비판합니까?
그러면 무서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옥에 가야 마땅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이 있으니 우리를 책망하기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잘못한 사람을 고칠 수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을 분명히 믿고,
우리 안에 오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유기성 / 규장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로마서 2장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로마서 8장 1절,2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사랑하는 주님,
오늘 주님께서 형제의 들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죄인임을 깨우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깨우치는 은혜로
그 깨우침으로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런던 켄터베리 교회에 니콜라이라는 사찰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니콜라이 집사님은 17살 때부터 교회에서 일을 하며
아무리 사소한 일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처리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니콜라이 집사님은 특히 매시간 교회의 종을 치는 일을 열심히 했는 데,
교회에 있는 동안은 한 번도 이 일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은 니콜라이 집사님을 신뢰해서 종소리와 시계의 시간이 차이가 나면 종소리에 시계를 맞추곤 했습니다.
니콜라이 집사님은 76세가 될 때까지 교회 일을 하며 종을 쳤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장성해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아버지를 쉬게 하려 했지만
니콜라이 집사님은 완강히 거절하고 매일 교회에 나가 일 을 하고 종을 쳤습니다.
얼마나 교회의 일에 대한 정신이 투철했던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종을 치려했고,
결국 종을 치러 가는 도중에 임종을 맞았습니다.
작은 일에 평생을 순종했던 니콜라스 집사님의 이야기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까지 흘러갔고,
여왕은 집사님을 영국 왕실의 무덤에 묻어주었 습니다. 또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이 날을 국경일로 지정했습니다.
순종하는 자의 상급은 맡은 일의 크기가 아니라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주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순종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같은 일을 하더라도 다른 태도를 보이게 하소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직한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