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은혜가 더 크다

안규수 2017. 4. 10. 06:20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베트남은 어제 국경일로 휴무일이라 가족들과 함께 달콤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었답니다. ^0^ 


바다가 낮는 곳에서 모든 것을 품듯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모두 품어 주셨듯이~ 

나의 자리에서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품고~ 기도하며 섬기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카일 아이들먼의 <은혜와 죄책감이 충돌할 때> 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범한 실수나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분이 우리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전에, 성경은 그들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죄가 등장한 순간, 그들은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을 피해 숨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때로는 우리의 은밀한 죄가 드러나고 더 이상 그것을 감출 수 없을 때 우리는 숨으려고 한다. 
가능하면 아는 사람들을 피하려고 애를 쓴다. 
수치심은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무자비하게 속삭인다.

“너는 용서받을 가치가 없어. 넌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여기에 은혜의 놀라운 특징이 있다. 
즉 은혜는 당신을 쫓아다닌다. 
당신은 도망쳐서 숨을 수 있다. 하지만 은혜는 끈질기다. 
은혜는 당신을 끝까지 따라올 것이다. 
지금 어떤 이들에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말씀을 읽을수록 은혜는 점점 더 강력해진다.

목사인 나는 ‘은혜’가 마침내 어떤 사람의 문제를 따라잡는 그 순간을 목격하기 좋아한다. 
나는 그런 순간을 ‘아름다운 충돌’이라고 말한다. 
그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충돌’이라고 하면 “부서진, 깨진, 망가진”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 단어들은 일반적으로 “아름답다”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에는 이런 아름다운 충돌들이 가득하다. 
부서지고 깨지고 망가진 삶이 예수님과 충돌한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요한복음 4장은 아름다운 충돌이 일어날 교차로다. 
예수님은 다른 도시로 가고 계셨다.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3,4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로 가려고 노력하신 것 같다. 
“통과하여야 하겠다”라는 말은 그가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마치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정해진 특정 시간, 특정 사람을 만나기 위해 
특정한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신 것처럼 말이다.

곧 아름다운 충돌이 일어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것을 자신의 달력에 표시해두신 것이다. 
은혜는 이 여인을 따라갔고 그 도시의 우물가에서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볕이 뜨거운 정오 즈음에 도착하신다. 
제자들이 마을로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해오는 동안 그는 우물로 가서 쉬려고 앉으신다. 
누군가를 만나기에 흔치 않은 시간과 장소이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만난다. 
한 여자가 물을 길으러 우물에 온다. 
보통 그 시간은 그런 일을 할 시간도 아니거니와 혼자서 물을 길으러 오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녀가 오자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신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유대인인 그가 사마리아 여인인 그녀에게 말을 걸자 그녀는 어리둥절해서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9,10

그녀는 정말 혼란에 빠졌다. 
그녀는 육체적인 갈증을 해소해줄 물만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물을 길을 그릇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가 생명수이시며 그녀가 이 물을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거라고 설명해주신다.

그녀는 여전히 그 비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좀 더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시기로 한다.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 4:16-18

예수님은 진실 앞에서 물러나지 않으시고 그녀가 한 일, 그녀의 삶이 엉망이 된 것을 사실대로 묘사하신다. 
계속해서 물을 긷는 관계의 우물도 그녀의 갈증을 해소해주지 않으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도 점잖게 괜찮은 척 행동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녀가 예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자신의 죄를 더 이상 감추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기를 원했다. 
아무도 그녀를 모르기 원했고, 만일 안다 해도 그들이 아는 것을 그녀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한 일, 자신의 모습 때문에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은혜와 충돌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 4:28-30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우리의 수치심, 죄책감과 충돌할 때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상황이 펼쳐진다. 
예수님은 우리가 한 모든 일을 아시지만, 그분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기 원하신다.

은혜가 더 크다. 카일 아이들먼 / 규장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창세기 3장 9,1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 요한복음 4장 10절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 히브리서 10장 17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 역대하 7장 14절

내 마음 속 깊은 상처와 죄책감에서 벗어나와 주님 바라보게 하소서. 
죄책감은 나를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내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 바라보게 하소서.



감사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감사할 일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감사할수록 감사할 일이 넘쳐납니다!

*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편 50:23)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잠 14: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아프리카의 한 소녀가 UN의 시 공모전에 낸 작품입니다. 

“태어났을 때 제 피부는 검은색이었습니다. 
자라서도 그대로 검은색이죠. 해 아래 있어도, 
무서울 때도, 아플 때도, 죽어서도 나는 여전히 검은색입니다. 
그런데 백인인 당신은, 분홍으로 태어나 자라서는 흰색이 되죠. 
해 아래선 빨간색, 겁에 질리면 노란색, 아플 때는 녹색이 되고 죽으면 회색이 되잖아요. 
그런데 왜 당신이 나를 유색인종이라고 부르나요?”

이 시는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고 UN이 뽑은 올해 최고의 시로 선정 되었습니다.
때론 차별은 편견과 무지에서 생겨납니다.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는 잘못된 사회적 편견으로 내 자신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습니다. 
그리고 그 편견으로 인해 다른 이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관심과 배려가 마음의 틈을 만들어야 사랑의 싹이 틀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넓은 생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주님이 모든 이를 창조하셨음을 늘 기억하고 편견을 갖지 않게 하소서.
차별적인 발언은 재미로라도 삼가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