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자

안규수 2018. 7. 13. 10:3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요즈음~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이 있는 데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말씀(약속)하신 영원은 어떤 것일까?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 진리를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 


유한한 시간을

넘어 영원으로의 여행~ 

넘 기대가 크지만 조금은 두렵고 떨리기도 하네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도 손기철교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자>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을 통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6)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도 기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

우리가 염려한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마음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세상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까?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29)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경륜을 생각해보십시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6:30)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찮은 들풀조차 돌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라고 믿고 부르면서도 자신을 온전히 맡기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1,32)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늘 삶의 결핍과 부족을 염려하고, 그 마음에 가득한 걱정을 내뱉으며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고,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형통, 축복,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에 집착합니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헌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애쓰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모든 필요가 은혜로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자신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나를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때부터 회복은 시작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겉사람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속사람의 삶의 방식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더 이상 육의 생각으로 살지 말고 영의 생각으로 살라고 한 뜻이기도 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5,6)

우리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게 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주신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결국 외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적인 변화만이 외적인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것으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입니다.

하나님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자. 손기철 / 규장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 잠언 14장 26, 2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립보서 4장 6, 7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요한일서 2장 27, 28절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주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주님만 온전히 신뢰함으로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인도해주세요.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지형이 험한 미국 콜로라도의 한 버스회사에서 운전기사를 모집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세 사람이 남아 최종면접을 봤는데 면접관이 가파른 절벽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만약 운행 코스 중에 이런 길이 있다면 운전할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절벽이 아니라면 차가 충분히 지날 수 있는 충분한 길이니까요.”
●두 번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도 가능합니다. 제 실력이라면 절벽 끝을 따라서도 무사히 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절벽 끝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겠습니다.”
버스회사는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버스회사에서 구하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지 ‘무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따라 담대하게 사는 것이 용감한 신앙이고, 말씀이 없이 담대하게만 사는 것이 무모한 신앙입니다. 
말씀을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용감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무모하게 생활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행여 영적 우월감으로 남 앞에서 과시하는 믿음의 실수를 하지 맙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