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수 2018. 9. 22. 15:0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어제 919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한반도내 사실상 전쟁 위협이 사라졌다는 반가운 소식에~ 넘 행복했습니다. ^0^ 

15만 평양시민을 향한 문대통령의 연설도 넘 큰 감동이었습니다. 

부산역을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그날이 속히 오길~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도 김유비님의 <나를 돌보는 시간>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성급하게 사람 앞에서 용서했다고 선언하지 마세요.
용서 못하는 사람을
다그치는 사람이 있어요.
단호하게 큰 소리로 말해요.

“성경에 쓰여있잖아.
용서해야 천국 간다고.”

나도 알아요.
묻고 싶어요.

용서 못한 사람이
불편한 이유가 뭔가요?
용서 못한 사람을
용서 못한 건 아닌가요.
용서 못한 사람도 용서해주세요.

“안 된다.
나도 힘들었다.
그래도 용서했다.”

당신이 용서한 만큼은
나도 용서했어요.

세상 모든 사람을
완전히 용서한 사람처럼
말하진 말아주세요.
용서했다고 한 말, 믿어볼게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나요?
용서할 수 있었던 힘.
당신인가요, 주님인가요?

당신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뒤돌아서서 갈 거예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주님 안에서 나왔다고 하면
나 참았던 말 할 거예요.

자기 능력으로
용서한 것도 아니면서
무슨 생색인가요.
말이 심했죠? 용서해주세요.

다른 사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부탁드려요, 진심으로.
당신도 아프고 힘들었잖아요.
잊지 말아주세요.
고통의 기억을.

마음 가다듬고
내가 하고 싶은 말 할게요.
“나 오늘 용서한다. 다 용서했다”라고
선언하지 마세요.
그건 구호일 뿐이니까요.

선언하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서만 선언하세요.
성급하게 사람 앞에서 하면
부작용만 생겨요.

용서는 성취가 아니라 방향이에요.
그리스도를 향해 걷다 보면
우린 용서할 수 있을 겁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건 고통스러워요.
주님을 사랑하는 건 행복하죠.
원수가 미울수록 주님을 사랑하세요.
원수를 묵상하지 말고 주님을 묵상하세요.
주님을 사랑하면 원수를 사랑하게 돼요.

아직 용서 못했는데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건가요?
내 사랑은 가짜 아닌가요?
이렇게 모자란데.

아니, 그렇지 않아요.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복수의 길을 돌아 나와
용서의 길로 들어섰다면
이제 안심하세요.

좁고 험하다고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저 끝에 나와 당신의 주님이
미소 짓고 계시니까요.

나를 돌보는 시간, 김유비 / 규장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 누가복음 11장 4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 마태복음 6장 14,15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에베소서 4장 32절

하나님, 용서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머릿속으로는 가능한데 감정적으로는 도저히 안 될 때가 많아요. 
원수를 묵상하지 않고 주님을 묵상하게 해주세요. 그래서 주님 안에서 참 자유와 사랑을 누리게 해주세요.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무디 선생은 모세의 생애를 세 가지의 단계로 묘사했습니다.

첫째는 ‘something’의 단계로 모세가 왕자로 있을 때입니다.
이 때 모세는 자신을 뭔가 할 수 있는 대단한 인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배운 지식과 자신이 누리는 지위로 무엇이든 해보려고 했으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둘째는 ‘nothing’의 단계로 왕궁에서 도망 후 40년간 광야에서 목자로 있을 때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살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부족한 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something’에서 ‘nothing’으로 오히려 낮아진 것입니다.

셋째는 ‘everything’의 단계로 이후 이스라엘의 리더로 쓰임 받았을 때입니다. 
이 때 모세는 자기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들어 쓰시면 
권능자(everything)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모든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지극히 평범한 질그릇에 불과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 성화되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능력이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이 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의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 되게 하소서.
나를 내려놓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매달립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