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유브라데 강을 넘어라(2)
안규수
2018. 12. 28. 04:46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아기 예수께서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기쁨을 누리고 나누셨는지요?
저는 어제 근무를 마치고 저녁에 교회 몇몇 가족들과 함께
떡을 함께 떼고 서로의 사랑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0^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쁨이 늘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윤성철님의 <유브라데 강을 넘어라>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아무것도 무서운 줄 모르고 야생마처럼 질주하던 30대의 나를 잠시 멈춰 서도록 한 말씀이 바로 에녹에 대한 기록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처음에는 “그래서 뭐? 대체 뭐했다는 거야?”라고 답답한 마음을 내뱉었다.
눈을 부릅뜨고 본들 에녹이 한 일은 두 가지뿐이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창 5:22-24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애 낳은 일이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를 성경에 왜 써놓았을까 싶었다.
일단 자녀를 낳는 일? 누구나 다 하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영어로 “함께 걸었다”(walked with God)라는 뜻이다.
에녹이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데, 그럼 치유가 일어났는가?
사람을 살렸는가? 아니 그런 기록이 없다.
가인 족속에게 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라고 선포했나? 그것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뭘 한 건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의 깊이는 본문의 배경과 흐름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을 떠나서 나간 가인의 세대들이 자신들의 두려움과 한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쳐 날뛰던 때에 그 가운데 비로소 셋으로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일어난다.
비교하자면 상대적으로 너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셋의 자손 가운데 에녹이 나온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자, 에녹 하면 다음 말씀이 떠오른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히 11:5,6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에녹은 하늘로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는데 이 인정의 핵심이 바로 믿음이었다.
히브리서는 이 믿음을 두 가지로 표현했다.
하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다음으로 살아 계신 이 하나님을 찾으면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에녹에게는 이 믿음이 있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이 믿음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가?
에녹이 살던 때에 하나님을 떠나서 나간 가인의 세대들 가운데는 아무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아무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때 에녹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그 하나님을 찾았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동행했다.
우리가 만약 누군가와 동행하기 원한다면, 여정을 함께하기 원한다면 목적지가 같아야 한다.
그 목적지를 향해 같은 마음, 같은 속도로 길을 가야만 동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동행의 여정에서 서로 마음과 생각의 깊은 것들을 함께 나누는 교제가 이루어진다.
이제 그림이 좀 그려지는가?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그 시대에 한 사람 에녹이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을 나누며
300년간 동행하여 하나님의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 동행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이 동행을 얼마나 좋아하셨으면 에녹을 그냥 데려가셨을까?
짧고도 강력한 에녹의 생애의 기록을 대하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내 안에 미숙하지만 한 가지 간절한 소원과 확신이 일어났었다.
뭔가 크고 대단한 일, 놀라운 사역을 통해 하나님에게 감동을 드리고 기쁨이 되고 싶어 했던 내게 이 메시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나는 가지
주님께 붙을 때 열매 맺는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동행의 여정 가운데 사역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우리 믿음의 반응과 순종을 통해 그분이 이루어가신다.
이 믿음이 들어온 것이다.
물론 이 동행의 의미가 삶의 실제적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풀어지는 데에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 요구된다.
하지만 핵심은 그분과 함께 깊은 것을 나누며 그분의 의중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삶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안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말씀을 따라 한 발 한 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따라 목자의 음성과 인도하심을 좇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관계로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요 10:3).
어떻게 동행할 것인가?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따라가는 것이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그리고 양처럼 우리는 날마다 매 순간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이 인도하시는 방향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과 걸어야 한다.
헨리 블랙커비(Henry Blackaby)의 《영적 리더십》(두란노)이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헨리 블랙커비 목사님은 비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비전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날마다 좇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동행이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유브라데 강을 넘어라. 윤성철 / 규장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 시편 139편 7-12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편 1-4절
하나님,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그 시대에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간을 동행하며 하나님의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큰 일로 혹은 대단한 일로 감동드리고 싶었는데 그것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좇아가는 양처럼 저도 주님께 그런 양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잠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벨라 아이젠버그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 끌려갔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고 모든 것이 이전과 같이 평화롭게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한 가지가 있었는데 이전처럼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도피를 하던 그녀는 믿었던 친구가 배신을 하는 상황도 경험했고,
또 전혀 의외의 인물이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는 일도 봐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하면서 수용소에서 해방된 뒤에도 누군가를 만날 때
‘이 사람은 나를 숨겨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쉽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그녀의 삶을 취재하던 작가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친구를 사귈 때마다 속으로 질문을 합니다.
저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나를 끝까지 숨겨줄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내 나이가 됐을 때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을 단 한명이라도 곁에 두고 있다면 성공한 거예요.
반대로 당신이 실종이 되든 죽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건 실패한 인생이에요.
돈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유명하든 나는 전혀 신경 안 써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에요.”
믿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있습니까? 혹은 다른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연단하고 또 그런 동역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아멘!!
주님, 동역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런 사람과 동역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