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영적 무기력은 끝나지 않는다

안규수 2019. 2. 13. 12:1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저는 어제 저녁 지인과 함께 테니스를 하면서~  

많은 땀도 흘리고 즐거움도 동시에 누리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된 힐링의 시간었네요~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에는 존 비비어 목사님의 <영적 무기력 깨기> 라는 책의 

Part 1의 제 3장 <영적 무기력은 끝나지 않는다>을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Part1. 영적 크립토나이트란 무엇인가 – 신앙을 무력화시키는 치명적 약점
1. 회피하고 싶은 영적 무능력의 상태
2. 위대하신 하나님 vs. 허점투성이 나
3. 영적 무기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4. 누룩과 같이 순식간에 퍼지는 무기력
5. 공동체 전체가 무기력에 갇히다
6. 가만히 있을 것인가, 깨뜨릴 것인가
7. 하나됨을 막는 크립토나이트를 제거하라.
 
(본문요약) 
 
지난 몇간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해 왔다. 
물론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해 왔다. 
문제는 교회가 하나의 몸이라는 공동체적 현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관심이 쏠렸다는 것이다. 
둘 다 무시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 
본보기가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여리고성 전투에서 범죄한 아간의 죄는 개인적인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사람의 탐욕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어김으로 죄를 지었을 때 백성 전체에게 그 책임이 돌아갔다. 
오늘날 교회에 약하고 병에 걸린 교인들이 왜 그렇게 많은 지 그 이유를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왜 교회에 실업자와 생활보호대상자가 넘쳐나는가? 
우리의 약함 때문에 극복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한두 가지 아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빌어먹는 사람이나 실업자가 한 명도 없었다. 
사도행전에도 최대교회 교인들이 부족함 없이 살았고 병에 걸리거나 허약해져도 금세 회복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렇지 못하는가? 
누군가의 죄가 여러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의 죄로 인해 아이성 전투에서 겪었던 일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죄에는 분명 개인적인 결과가 따른다. 
아간은 결국 심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죄에서 비롯한 영적 크립토나이트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나와 함께 이 조사를 계속하면서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만큼이나 당신이 한 몸의 일부라는 의식이 강해지기를 원한다. 
한 지체로서 당신의 행동이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도 복이나 고통을 전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내 삶의 크립토나이트 제거하기)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본 사람이라면 막시무스 장군이 “뭉쳐라!하나로!” 라고 외쳤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전략은 눈부신 승리를 가져왔다. 
다 알다시피 가장 효과적인 군사 전술은 각개전파다. 
예수님은 이 점을 잘 알고서 분멸된 집은 버틸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마12:25를 보라). 
그리스도의 몸이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으로 뭉치지 않고 분열되면 전체가 약해진다. 
이것이 교회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바치는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활동 하나하나를 모두 예배로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일 아침만이 아니라 삶 전체를 원하신다. 
일과 가족, 취미까지 삶 전체를 예배로서 살지 않으면 지금 회개하라. 
예배의 삶이 어떤 삶인지를 보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나님이 부여 주시거나 말씀해 주신 것을 쓰고, 
자신을 그분께 온전히 바칠 수 있도록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중국에 최후까지 남아있던 선교사이자 한국교회역사의 산 증인인 
방지일 목사님은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말씀을 똑같이 읽어도 스스로의 삶에 비추어 어떤 날은 기쁨이 느껴지고 
또 어떤 날은 너무나 부끄러워 회개하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기에 때때로 이런 혼자만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고동치는 가슴을 맡기며 매일 같이 회개와 감격하는 시간을 끊을 수가 없어 
평생 동안 새벽을 깨워 말씀에 삶을 비추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방 목사님은 나중에 이 시간을 ‘심장을 깨끗하게 하는 운동’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생명의 필수적인 심장의 움직임처럼 신앙의 기본을 튼튼하게 해 교만하지 않고 
더욱 더 주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이셨습니다.
 
라브리 공동체를 세운 세계적인 기독교 변증가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마지막 유언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청년들이여,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실수를 하지 마십시오.”
행복에 눈이 멀어 참회하는 눈물과 거룩함을 멀리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행복은 기쁨만이 존재하는 삶이 아니라 
회개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어야 합니다. 
잘못된 행복을 추구하며 말씀의 거울에 삶을 비추는 일을 등한히 하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말씀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고 솔직하게 주님과 교제하게 하소서.
큐티나 경건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집중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