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안규수
2019. 11. 13. 12:10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도 하지요.
영의 특징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 나라든지 지옥이든지~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영생과 영벌의 갈래 길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봅니다.
얼마나 빨리 달려가는 가보다
바로 가고 있는 가가 더 중요합니다.
수 많은 무리가 전속력으로 영벌의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나요?
나도 그 무리에 속해 있을까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손기철 장로님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만 기도와 믿음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믿음생활을 하고 기도한다.
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인지, 자기 나라와 의를 구하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믿음이나 기도 없이 살 수는 없다.
기도. 단지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인가?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온전한 인격적 사귐이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고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올려드림으로써 그에 대한 응답, 해결, 보상만을 받고자 한다.
기도가 단지 이렇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면,
굳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거나 친밀함을 나눌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야 하며,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마음을 일치시켜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한다.
결국 기도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갖기 위해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 믿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면
그다음 전략으로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게 하고 그 결과 바쁘게 만든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한자리에 있지 못하게 되고,
여유가 없기 때문에 풍성함을 잃어버리게 되고, 주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문을 닫는다”는 것은 기도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이 세상과 단절되어
모든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활동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은밀한 중에 계신”이라는 의미는 단지 물리적 세계로부터 차단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모든 역동성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몸은 격리되었지만 마음은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슨 생각이라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참뜻은 육신의 눈이 닫히고 마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임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상태는 물리적으로 ‘조용한(quite)’ 곳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모든 역동성이 사라지는 ‘은밀한(silent)’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기도는 육신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바쁜 삶 가운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이
바로 마음의 모든 역동성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바로 ‘거룩한 낭비’이다.
이 훈련이 되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밀한 곳에 머물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손기철 / 규장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 마가복음 14장 38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 마태복음 6장 6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 요한계시록 3장 7절,8절
주여, 주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기에 모든 장소에서 저희가 하는 모든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정확하게 읽고 계십니다.
그 주님 앞에 저희가 무엇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만물이 주님을 바라보며 찬양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는 영안을 열어 주소서.
깨어있어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12: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노년에 갑자기 암에 걸린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평소 온화한 성격에 가족과도 관계가 좋은 할아버지였지만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는 갑자기 성격이 괴팍해지고 가족들에게 폭언을 하다 급기야 면회까지 거부를 했습니다.
가족들은 걱정이 돼서 병원을 찾아왔다가도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가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평소 아끼던 손자가 찾아왔습니다.
가족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손자를 병실로 들여보냈는데 30분 동안이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손자가 밝은 표정으로 나와서 가족 모두를 병실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할아버지는 암에 걸리기 이전의 온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30분 만에 변화된 할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란 아이의 아빠는 몰래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고 손자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너무 아파 보이시기에 달려가서 안고 계속 울었어요.
한참을 울고 나니까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주시던 걸요?”
백 마디 말보다 함께 울고 웃는 것이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소외된 이웃들,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위로할 땐 잘잘못을 따지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말고
가슴으로 다가가 함께 웃고 울어주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말하기보다 듣고, 판단하기보다 위로해줍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