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너의 기준과 생각으로 대하느냐?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떤 때는
불신자들보다 더 무섭고 교제가 꺼려질 때가 있다.
여기에 언급된 무서운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더 가슴 시리게 아프고 괴롭다.
오늘도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난 지금까지 너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너는 왜 그 사람을 너의 기준과 생각으로 대하느냐?” (오늘의 나눔 본문 중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최요나 선교사님의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원초적으로 ‘실패’했다.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죄악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실패’를 안고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우리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수많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자신의 약점, 실수, 부족함을 가리기 위한 투쟁을 평생 하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살게 된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
나는 가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서울 때가 있다.
특히 신앙적인 열심이 특별한 분들을 볼 때마다 더욱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
아무 조건 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구원 받고 난 이후에는 철저히 외모로, 드러난 겉모습으로 사람을 대한다.
나보다 못하면 어깨를 으쓱대고, 나보다 잘하면 지독한 열등감에 빠진다.
아무 조건 없이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왜 우리는 수많은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는가?
주의 ‘긍휼’을 힘입어 하루하루 산다고 고백하면서,
주의 긍휼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집행한다.
주의 긍휼을 힘입고 하루하루의 삶이 감사하다 하면서
왜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평가하며 사람을 대하는가?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말씀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며 정죄한다.
주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영이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말씀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는가!
‘기도’를 통해 주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도한 후에는 기도의 영성으로 다른 이의 영성을 함부로 평가해버린다.
기도는 다른 이의 영성과 삶에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허락하신 주의 선물이 아니던가!
‘선교’를 열심히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선교한 후에는 다른 사역자들의 열매 유무를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미주알고주알 하며 입에 올린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떤 때는 불신자들보다 더 무섭고 교제가 꺼려질 때가 있다.
여기에 언급된 무서운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더 가슴 시리게 아프고 괴롭다.
오늘도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난 지금까지 너를 그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너는 왜 그 사람을 너의 기준과 생각으로 대하느냐?”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 최요나 / 규장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_누가복음 6장 41절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_ 누가복음 6장37절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_ 로마서 2장1절
하나님, 대가 없이 구원의 은혜를 누린 우리가 그 은혜를 너무나도 쉽게 잊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비난했음을 회개합니다.
주의 말씀은 살리는 영이신데 우리는 죄를 깨닫지 못한 채 믿음이 있는 자라고 착각하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남을 판단했습니다.
주님 이제 다시 돌이켜 남을 판단하는 자가 아닌 은혜를 나누는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왕상 8:56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미국 앨라배마주의 월터는 힘들게 첫 직장을 구했습니다.
고객의 이삿짐을 날라주는 회사인 벨홉스에 입사한 월터는 ‘첫 출근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출근 전날 저녁에 자동차가 고장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객의 집은 32km나 떨어진 곳이라 대중교통은 첫차를 타도 시간에 맞출 수 없었습니다.
월터는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정부터 집을 나와 걸었습니다.
새벽 4시쯤 거리를 방황하는 월터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이 사정을 듣고는
오히려 차로 데려다줘 다행히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고객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정을 들은 고객은 월터의 열정에 놀라며 다른 직원들이 올 때까지 잠시 쉬라고 했지만
월터는 괜찮다며 먼저 일을 시작했습니다.
월터의 사연은 고객과 다른 직원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 벨홉스의 사장인 마클린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월터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사장은 월터의 행동이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서비스 정신’이라고 칭찬하며 보너스로 차를 선물했습니다.
약속의 가치는 지키려는 사람의 태도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약속은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합니다.
나와의 약속, 사람들과의 약속, 특별히 하나님과의 약속은 최선을 다해 지키십시오. 아멘!!
주님!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을 믿고 지킬 약속만 하게 하소서.
한 번 정한 약속은 핑계를 대지 말고 무조건 지킵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