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세상보다 한발 앞서 하나님의 눈으로 죽음을 보라!

안규수 2020. 9. 22. 09:43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주말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는가?’

‘내 인생을 최고로 만드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무일푼으로 세계적 부자가 된 사람들로부터 내가 배울 공통적인 특징들은 무엇인가?’

‘지금껏 쌓아온 성공을 어떻게 더 잘 관리할 수 있는가?’

 

많은 경우, 성경책을 펼쳐 들고도 같은 질문들을 던져댄다.

 

시대별로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은 여전하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성공신화들은 하나같이 죽음도, 죽음 이후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0년 안에 누구든 반드시 죽을 것이니

적당히 성공하라는 이야기 따위는 없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전혀 예측 불가하니

성공은 허무하다는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혹은 몇 년 안에 자연사할지 등을 미리 예상해보라는 말도 없다.

 

죽음을 망각한 채 삶이 영원한 것처럼 사는 인생들에게

성경은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눅 12:20 (오늘의 나눔 본문 중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송준기 목사님의 <살리는 기도>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떠난 이래 죽음에서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구나 죽음의 추격을 당하다 결국 죽었다.

죽기까지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는 모습도 여러 가지다.

질병, 사고, 문제, 상처, 기타 다양한 종류의 고통이 다 한통속이다.

이들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이 없다.

 

그런데 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도처에 있는데,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디 가서 딱히 배운 적이 없다.

죽음에 대한 조언이 간혹 있긴 하다.

 

세상에 떠도는 조언들은 삶에 대한 조언이 대부분이다.

이런 영역은 통속적으로 ‘성공문학’ 혹은 ‘자기계발 분야’라고 불린다.

최근에 생긴 철학도 아니다. 역사가 깊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의 철학자나 공자나 노자 같은 동양의 스승들도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성공인지 이미 조언했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지혜자가 이 분야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죽음보다 삶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물어댄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성공을 이룰 수 있는가?’

‘내 인생을 최고로 만드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무일푼으로 세계적 부자가 된 사람들로부터 내가 배울 공통적인 특징들은 무엇인가?’

‘지금껏 쌓아온 성공을 어떻게 더 잘 관리할 수 있는가?’

 

많은 경우, 성경책을 펼쳐 들고도 같은 질문들을 던져댄다.

 

시대별로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은 여전하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성공신화들은 하나같이 죽음도, 죽음 이후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예를 들어, 100년 안에 누구든 반드시 죽을 것이니 적당히 성공하라는 이야기 따위는 없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전혀 예측 불가하니 성공은 허무하다는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혹은 몇 년 안에 자연사할지 등을 미리 예상해보라는 말도 없다.

 

죽음을 망각한 채 삶이 영원한 것처럼 사는 인생들에게

성경은 죽음에 대해 질문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눅 12:20

 

죽음을 잊고 사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있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누구에게도 없어서다.

그러나 살리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남다르다.

그들은 모세와 히스기야만큼이나 특별하다.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죽음을 남보다 앞서 인식한다.

모세와 히스기야는 자기 능력으로 죽음을 다루지 않는다.

세상보다 한발 앞서 하나님의 눈으로 죽음을 본다.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죽음의 출처를 자각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을 떠나면 죽고 가까이하면 산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매 순간 놓치지 않는다.

삶을 대하는 관점이 남다르다.

죽을 때에 가서야 죽음을 인식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하나님의 생명력을 다루는 ‘영원’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산다.

죽음과 생명을 바라보는 그들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다.

 

둘째, 이미 하나님과 남다른 기도의 관계가 쌓여있다.

그들에게 남다른 시각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살리는 기도자들은 삶을 기도에 사용한다.

이미 하나님과 오랜 시간 기도로 교제해오면서, 자신과 다른 이들을 기도로 지켜왔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하나님의 관점을 엿본다.

 

모세와 히스기야는 살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죽음을 알려주시지마자 했다.

만약 그들이 평소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지속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대화해왔고, 하나님의 말씀과 관점에 익숙했다.

 

셋째,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기도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발견한 죽음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이다.

죽이실 것이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었다.

죽음을 미리 알려주셨다는 것은 살리시겠다는 뜻이었다.

히스기야도 모세도 이를 알았다.

덕분에 그들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살리는 기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까지 완전히 기도에 몰두했다.

 

둘의 기도 모습은 달랐다.

모세는 목숨을 걸었고, 히스기야는 면벽 통곡했다.

그러나 핵심은 같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기에 적극적으로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떤 기도든 말씀대로 기도하면 이뤄진다(요 15:7).

살리는 기도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안다.

아는 대로 기도한다.

그들이 기도에 내놓은 목숨은 살리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다.

 

살리는 기도. 송준기 / 규장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요한복음 15장 7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2장 2절

 

하나님, 당신의 눈으로 세상과 죽음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을 떠나면 죽고 가까이하면 산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주님께 꼭 붙어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만이 우리를 살리실 수 있음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수원의 중앙기독초등학교는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을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통합교육을 진행한다.

이 학교는 우리 부부가 하나님의 은혜로 설립했는데 장애인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아내 트루디 사모의 노력과 관심으로 통합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인 학생들이 서로 어우러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선생님들이 이렇게 고백한다고 한다.

 

“처음엔 우리가 가르치고 도와주려 했지만

하나님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사랑과 존중을 배우며 더 많이 변했습니다.”

다음은 첫째 아들이자 이 학교 교목 김요셉 목사의 저서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에 나오는

통합교육 전문가 선생님이 알려주는 ‘장애아동 대하는 방법’이다.

 

1.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아이만의 특별함을 바라봐주세요.

2. 정신연령이 아닌 생활연령으로 대해주세요.

3. 일반 학생과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많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김장환 목사 개인 노트에서 발췌 편집)

 

조금 다르고 특별한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존귀한 사람이며 자녀입니다.

편견과 차별 없는 사랑의 눈과 배려의 손길로 사랑하며 섬기십시오. 아멘!!

 

주님! 부족한 사랑과 잘못된 지식으로 다른 이에게 상처주지 않게 하소서.

장애인들을 제대로 배려하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