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은 이유!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내가 주인되어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님으로 모시자
성경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천정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죄의 결과로 그냥 심판하면 되는데
살리고 싶으셔서
계속 회개하라 하시는 거예요. (김선교)
죄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전부를 주셨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님이신가요? (오늘의 나눔 본문 중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책 <너무 죽고 싶어서 너무 살고 싶어요. 의연> 중에서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feat.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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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
십자가라는 단어가 익숙하여,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었는지 잊기 쉽다.
하지만 십자가형은 매우 치욕스럽고 모진 사형법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땅이 신성하니 죄인의 몸을 땅에 둘 수 없다며 높은 막대에 죄인을 매달아 죽였다.
그뿐 아니라 동물의 뼛조각이 박힌 채찍으로 죄인을 치고
(그로 인해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겪는다)
자신이 달릴 십자가를 지고 형장까지 가도록 했다.
가까운 길을 두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돌아가게 했다.
로마 시민권자들은 어떤 죄를 지어도 십자가형으로 사형당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 형벌은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웠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순전하고 온전하신 분이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하나님이셨기에 죄가 없으셨다.
또한 십자가를 박차고 나갈 능력도 있으셨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면 스스로 구원하라!”라며 그분을 조롱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모독도 참으시면서 십자가를 지셨다.
왜인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지옥에 가는 것을 두고 보실 수 없으셨다.
채찍질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그 길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눈총이 얼마나 아리셨을까.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것을 아셨을 것이다.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형벌인지.
예수님도 인간으로 오셨기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셨다.
실제로 예수님은 땀방울이
핏방울로 비칠 만큼
절절하게 기도하셨다.
제발 이 잔을 거둬달라고.
그렇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 마냥 떼를 쓸 수도 없으셨다.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
그래서 제발 이 잔을 거둬달라시던 그 기도를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하지만 아버지 원대로 되게 해주세요.”
이를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은 어떠셨을까?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미어지셨을까.
그렇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은 계획을 바꾸시지 않으셨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렇기에 우리의 우선순위는 오직 예수님이어야 한다.
그분께 받은 사랑은 세상 그 무엇을 주어도 다함이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작은 시련과 고통에도 예수님을 쉽게 버려왔다.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순간순간 그분의 사랑을 외면했다.
어쩌면 예수님을 귀찮아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몸은 교회에 있으면서 머리로는 딴 생각을 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하기보다 사람과 의논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갔다.
내 잘못된 우선순위로 내 멋대로 살았으면서 하나님의 딸이길 바랐다.
하나님께 복 받기를 바라고 내 것을 내놓으란 듯이 그분께 당당히 요구했다.
“내 권리를 주세요!”
어쩌면 나는 성경의 탕자보다 더 뻔뻔하게 요구했다.
아직도 내게는 많은 회개가 필요하다. 주님 ㅠㅠ…
주님, 얼마나 아프셨나요?
채찍과 십자가의 못보다도
저희의 외면과 멸시와 모멸이
더 아프시지는 않으셨는지요.
너무 죽고 싶어서 너무 살고 싶어요. 의연,그림_유세은 / 규장
★ 말씀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이사야 53:5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 로마서 10:21
★ 묵상 ★
# 예수님을 믿는다는것은
#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 내가 주인되어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 예수님을 나의 주인님으로 모시자
# 성경이 이해되기 시작했다_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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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장이신_하나님께서
# 죄의 결과로_그냥 심판하면_되는데
# 살리고 싶으셔서
# 계속 회개하라_하시는거예요_김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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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 우리를 위해 전부를 주셨는데
#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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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회개가 죄를 이기게 한다_찰스스펄전
# 예수님보다 더 높아진
# 우상이 있다면 알려 달라고 기도하기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신라 시대 최치원은 12살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독 엄했던 아버지는 “10년 안에 당나라에서 벼슬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신분이 낮으면 벼슬을 할 수 없었던 신라 시대에 유일하게 골품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당나라의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나라에 도착한 최치원은 6년 만에 과거에 합격했고, 뛰어난 문장가로 인정받았지만
뒤숭숭한 당나라 사정에 크게 쓰임 받지는 못하고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신라에서는 유학파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요직을 맡았고,
외국으로 보내는 서신을 도맡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이런 최치원을 두고 당시 신라에서는 ‘글솜씨를 타고난 사람’,
‘세기에 한 번 나올 천재’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평을 들은 최치원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천재라고 말하는데 이는 전혀 틀린 이야기입니다.
남이 백의 노력을 할 때 나는 천의 노력을 했을 뿐입니다.”
세상에 뭐든지 저절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타고난 것 같아 보이는 천재들도 남몰래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위해,
더 나은 신앙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십시오. 아멘!!
주님! 더 나은 비전과 더 나은 신앙을 위한 꿈을 주소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나를 위해 노력에 집중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