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런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까?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어떤 모자란 사람이 긴 막대기로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의 머리를 계속해서 때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걱정이 되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두드리다가 갑자기 멈추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 기분을 잠시 맛보기 위해 이렇게 고생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잠시 동안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이 이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잠시 동안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돈, 명예, 권력의 막대기로 자기 자신을 혹사 시킵니다.
피를 흘릴 정도로 혹사 시킵니다.
모자란 사람은 자기 머리만 때리지만
똑똑한 사람은 자신은 물론 남의 머리까지 때립니다.
더 높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더 칭찬 받고, 더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자기와 남을 때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나눔 본문 중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조동천 목사님의 <나를 변화시킨 세가지 질문> 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파트2. 어떻게 살 것인가? 03. ‘나의 하나님’으로 끝까지 믿으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마 4:6
마귀는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대단히 믿음이 좋은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것을 왜 테스트하겠습니까?
테스트는 검증이 안 될 때, 의심이 갈 때 하는 것입니다.
테스트를 당하는 당사자는 테스트해 보고 나서 믿겠다니 대단히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야구 선수 선동열은 일본 야구에서 은퇴한 뒤 미국 진출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 구단에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빠 포기해 버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국보급 투수도 자신의 능력을 믿어 주지 않고 테스트 당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데,
하물며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미물에 불과한 인간에게 시험 당해서야 되겠습니까?
마귀는 지금 이 같은 무례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하면 알아서 부딪히지 않게 하실 것을 믿으면 됩니다.
'어디 그런가 아닌가 보자'는 식으로 하나님을 테스트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제안에 대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 전에 '너의 하나님' 이라고 언급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나는 개인적인 교제가 이뤄지는 관계가 확실한 사이입니다.
목사님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예수님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 20:1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이상한 삶의 방식을 요청하면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란 의문을 달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시험에 드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멀리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외롭고, 지치고, 소진되었을 때,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확신이 없을 때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풀무불이 타오르고 천하를 호령한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을 내는 상황에서 그들은 하나님만이 참 예배할 신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불꽃의 타오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뜨겁게 느껴졌고,
세계를 정복한 바벨론 왕의 통치권보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더 실감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잡혀온 비참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들의 마음을 방해할 만한 세상의 권력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6-18"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라는 철저한 신뢰였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가장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 절망적인 순간에도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마 27:46
그런 다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는가, 나를 버리셨는가, 어찌하여 나의 기도에 잠잠하시는가 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을 여전히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런 순간에도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 '저들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이 예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슈퍼맨 신드롬, 스타 신드롬 등
모두 영웅이 되어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굉장한 인기와 능력을 지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성공적인 인생인 줄 착각합니다.
현대인은 모두 이 같은 시대적인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면서까지 능력과 인기를 얻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마치 다음의 어리석은 사람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떤 모자란 사람이 긴 막대기로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의 머리를 계속해서 때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걱정이 되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두드리다가 갑자기 멈추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 기분을 잠시 맛보기 위해 이렇게 고생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잠시 동안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이 이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잠시 동안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돈, 명예, 권력의 막대기로 자기 자신을 혹사 시킵니다.
피를 흘릴 정도로 혹사 시킵니다.
모자란 사람은 자기 머리만 때리지만 똑똑한 사람은 자신은 물론 남의 머리까지 때립니다.
더 높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더 칭찬 받고, 더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자기와 남을 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시킵니다.
선한 목적을 위해 악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요?
선한 목적은 수단도 선해야 합니다.
선한 목적을 이루는 과정도 선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수단이 악하다면 목적도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과 남을 막대기로 마구 쳐서 얻는 기쁨은 악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쁨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별한 능력과 기적을 요구하는 시대의 유혹 속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삶은
이 세상에서 영광의 길이 아니고 십자가의 길임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의 길은
넓고 평탄한 길이 아니라 좁고 협착한 길임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짊어지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지 영광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러 오셨다고 주님은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이제는 시험이 닥쳤을 때 말씀으로 말씀 되게 하십시오.
욕망이 삶을 주도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에 내 삶을 맞추고 말씀에 따라 한 발 한 발 내 딛으십시오.
말씀을 내 욕심을 위해 이용하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는 이처럼 말씀이 중심이 되어 세상의 가치관을 바로잡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히 연결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역대상 16:7-18
미국 국립보건원은 다이어트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모집해 매일 먹는 음식을 노트에 적으라고 했습니다.
‘먹는 음식을 노트에 적는 것’이 보건원의 유일한 제안이었습니다.
‘운동하고, 술을 끊고, 패스트푸드를 줄이라’는 다른 일반적인 다이어트와는 달랐습니다.
그러나 먹는 음식을 적으라는 이 단순한 일을 무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1,600명의 지원자 중 약 30%의 사람만이 음식 일기를 제대로 적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6개월 뒤에 일어났습니다.
음식 일기를 적기만 한 사람이 일반적인 다이어트를 한 사람보다 체중이 2배 이상이나 빠졌기 때문입니다.
일기를 보며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주 많은 양을 먹는지 알게 됐고
자발적으로 안 좋은 습관을 없애고 양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음식 일기를 적은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살을 빼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체중을 감량할 수 있었고 요요현상도 적었습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진정한 나를 알 수 있듯이
주님이 주신 감사를 잊지 않을 때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게 됩니다.
내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은혜를 기억함으로 누리십시오. 아멘!!
주님! 베풀어주신 귀한 은혜를 단 하나도 잊지 않게 하소서.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감사 제목을 5개씩 적읍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