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고매 향기 그윽한 선암사에서

안규수 2021. 3. 25. 17:59

   섬진강 따라 꽃 폭죽 터지기 시작한 3월이다. 구례 산수유와 광양 다압 매화마을 청매로 눈을 씻었다. 마지막으로 순천 조계산 선암사 꽃 잔치가 보고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산문에 들었다. 선암사는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총림으로 신라 875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울창한 숲이 드리운 짙은 그늘로 상쾌하기 그지없다. 마음속 먼지까지 깨끗이 씻어 줄듯 맑게 흐르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흙길이어서 더욱 좋다. 부도전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무지개다리가 나온다.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다리(昇仙橋)와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니는 누각(降仙樓)이 어우러진 풍경은 선암사의 으뜸가는 볼거리다. 승선교에 올라 바라보는 강선루는 흐르는 계곡물에 그림자가 어리어 천상의 누각처럼 선경을 자아낸다.
   일주문에는 순박한 표정의 용龍 조각이 장식된 소맷돌이 있고 배흘림기둥 옆으로는 낮은 담장이 꽃나무로 가려져 있다. 일주문을 지나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오르면 곧장 범종루로 이어진다. 선암사에는 흔히 다른 사찰에서 일주문과 종루 사이에 배치되는 천왕문, 금강문, 인왕문이 없다. 뒤편 조계산 정상이 장군봉이므로 졸개인 사천왕이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다. 산 능선 경사지에 자리한 선암사는 여러 개의 단과 낮은 축대로 이루어져 있다. 만세루와 설선당 사이의 계단에서 보면 각각의 단에 배치된 전각들이 조금씩 맞물려 보이면서 깊은 공간감이 생긴다.
    대웅전 동쪽에 있는 심검당은 사찰의 운영을 담당하는 총무, 재무, 원주스님들이 기거하는 승방이다. 선암사는 심검당, 설선당, 창파당, 무량수각 등 ㅁ자형으로 구성된 승방들이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대부분 사찰이 생활상의 불편을 이유로 기존의 승방을 허물거나 비워두고, 새로 만든 보일러 건물에서 따뜻하고 편리하게 지내는 데 반해, 선암사의 승방은 그 안에서 밥 짓고 빨래하는 스님들의 일상이 아직도 전통적인 것을 고수하고 있다.
   선암사의 지세가 산강수약山强水弱이라 화재가 빈번해 여러 번 중창되었다. 순조23년(1823년)에 마지막 화재가 발생하여 불사를 일으킨 후 오늘에 이르렀다.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비보裨補로 심검당 환기창에 [水] [海] 등 물과 관련된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선암사 경내에서 가장 개성적인 건물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유형문화재 169호)이다. 순조 24년(1824)에 호암 대사가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에 관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호암 대사가 관음보살의 시현을 바라며 조계산 장군봉의 배 바위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도 대사는 관음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지성이 부족한 것이라 여기고 낙심한 나머지 죽기로 작정, 벼랑에서 몸을 던졌다. 그때 한 여인이 나타나 그의 몸을 사뿐히 받았다. 그 여인은“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보리심菩提心이 아니다."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대사는 자신을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세음보살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순간 보았던 보살의 모습대로 불상을 조성하여 丁자각 형태의 원통전을 짓고 보살을 모셨다. 한편으로 절 입구에 승선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건물 정면 문창호는 화려한 모란꽃 창호로 장식되어 있고 문 아래 궁창에는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 찧고 있는 토끼 두 마리와 날아다니는 파랑새를 장식해 놓았다. 후사가 없던 정조는 눌암선사에게 원통전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도록 명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바로 순조이다. 순조는 이에 보답하는 뜻으로 큰 복을 받을 밭이라는 의미의 '大福田' 친필현판을 12세 때 하사하여 지금도 원통전에 걸려 있다.
   선암사 볼거리 중 하나가 해천당 옆에 자리 잡은 뒷간이다. 뒷간 입구에는 오래된 표기법으로 쓴 '뒤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람들은 애교스럽게 '깐뒤'라 부른다. 예로부터 가풍을 알려면 화장실과 부엌을 보라고 했다. 크고 깊은데다 깔끔하고 냄새도 없으면서 고풍스러운 미를 겸비한 丁자형의 이 뒷간이야말로 단아한 선암사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과 복효근 시인의 유명한 시 ‘선암사 해우소’가 있다.
   무우전 왼쪽 돌담길로 들어섰다. 담을 따라 늘어선 고 매화가 꽃불을 밝히고 있다. 무우전 돌담길은 이 땅에서 우리 매화가 가장 아름답게 피는 길로 소문이 나 있다. 스무 그루 남짓 늘어선 매화나무들 나이가 적어도 300살 안팎이다. 매화가 150살이 넘으면 고매라 부른다니 고매 중 고매다. 그러나 매화나무가 늙어서 꽃은 볼품이 없다. 하지만 짙은 향기와 기품을 잃지 않고 있다. 바람결에 고운 향이 코끝을 스친다. 고매 굽은 등걸에 푸르스름한 잿빛 이끼가 껴 휑하다. 
  돌담길 왼쪽 원통전과 칠전선원 사이에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된 홍매가 있다. 고려 때 대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선암매다. 아름드리 줄기에서 뻗어나는 가지들이 꽃망울을 자잘하게 달고서 담 넘어 원통전을 수줍게 넘겨보고 있다. 약 600여 년 전에 천불전 앞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해진다. 긴 세월 꽃을 피우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꽃향기에 취해 있으면 내 안에서도 은은한 삶의 신비가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선암사가 옛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사찰재산은 조계종 소유, 승려는 태고종 소속이라 함부로 불사를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비구승과 대처승 사이에 아픈 갈등의 역사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오랜 세월 바래고 비바람에 씻긴 고색창연 古色蒼然한 절집을 지켜 온 샘이다. 
  무우전 툇마루에 앉아 소등처럼 느리게 뻗어나가는 조계산을 바라본다. 산은 듬직하고 차분하다. 절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치 묵은 동네 같은 선암사, 그래서 어느 절보다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다. 
  선암사에는 반세기가 지난 아련한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국어 선생님과 친구 셋, 벌교에서 이곳까지 30리 길을 걸어서 처음으로 찾았었다. 산사와 고매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창연한데, 선생님과 친구 둘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한 사람은 생사가 불명하다. 계곡에서 시냇물 소리와 쏴 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