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크리스천의 삶은 ‘예수님 수저’(지저스 스푼)로 사는 삶이라는 것!

안규수 2021. 4. 2. 16:0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꿈꾸며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왔지만 사실 가나안 땅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었다. 

그리하여 정탐꾼 열두 명이 뽑혔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살피던 그들은 깜짝 놀랐다.

 

가나안 사람들은 몸집이 거대한 거인 족속이었다. 

성읍은 너무 크고 견고했다. 

그리고 그 땅은 젖과 꿀이 줄줄 흘렀다. 

가나안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천상 금수저였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가? 

노예 출신이고,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옷 몇 가지뿐인 흙수저가 아닌가! 

그들의 40일 정탐은 두려움과 자기 좌절만 가져다주었다.

 

잔뜩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이런 정탐꾼들이 보고회를 열었다. 

보고회는 울음바다로 끝났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를 흙수저로 생각하고 울부짖는 것이나 태어날 때부터 거인이었고 

소유의 풍요를 자랑하며 견고한 성을 쌓고 있는 

과격하고 오만한 가나안 족속이 금수저로 자칭하는 것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규정짓지 않았다. 

그들에게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는 듯했다. 

인간의 시각을 뛰어넘는 소망을 가진 자들이었으니.

 

그들은 가나안 땅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나 과장된 의미부여 없이 사실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가 잔뜩 나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그들을 돌로 치려 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말은 터무니없고 어리석고 불가능한 말에 불과했으니까.

 

진실을 말할 때는 어느 쪽의 돌이든 맞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제 스스로를 어떤 규정의 틀 안에 넣지 않은 이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련다. 

그들은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자신을 어떤 틀에 넣는 사람들은 사실 두려움과 불안,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그런 두려움이 없었다. 

그들에게도 독특한 비교의식은 있었다. 

무엇을 구분 짓는 것에 대한 의식은 없는 듯한 그들에게서 굳이 금수저와 흙수저의 기준은 찾는다면,

 ‘누가 보호자냐?’ 하는 것이었다(민 14:9).

 

이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도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한 영원한 그들의 보호자는 혈육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말한 보호자는 창조주시다. 

그들에게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면 창조주의 보호에 ‘의존하는 자’와 ‘의존하지 않는 자’일 것이다.

 

그들은 백성에게 상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삶의 성패는 누구를 보호자로 인정하느냐에 있다고 했다. 

그들 언어의 주제는 늘 그들의 보호자인 하나님이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창조주의 기쁨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들을 통해 이루시는 기업을 볼 것이라고 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 민 14:8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삶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창조주의 손에 즐겨 들려 사용되는 삶,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삶. 

크리스천의 삶은 ‘예수님 수저’(지저스 스푼)로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세상의 조류에 휘말려 화가 잔뜩 나 있지는 않은가?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크리스천의 정체성은 ‘나는 지저스 스푼이다’(I am Jesus Spoon)라는 것을 기억하자.

 

지저스 스푼, 오인숙 / 규장

 

† 말씀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 민수기 14장 9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 신명기 32장 10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편 4절

 

† 기도

하나님, 제 안에 있는 비교의식이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이 비교의식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을 의존하는 자인가만을 생각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삶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인정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지저스 스푼이란 정체성을 회복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약 4:16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네팔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던 큰 지진이 발생한 당시, 

인터넷에는 서로 안고 있는 어린 남매의 사진이 ‘참혹한 현장을 알려주는 모습’이라며 떠돌았습니다.

사진 자체는 네팔의 모금을 돕기 위한 좋은 의도로 올린 것일지 모르겠지만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이 남매는 베트남의 한 마을에서 촬영됐으며 촬영된 날짜도 지진이 일어나기 몇 년 전이었습니다.

난민 문제가 한창 이슈일 때 ‘압두 디우프’란 흑인 소년이 

처참한 난민의 여정을 소개하는 SNS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압두는 영상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스페인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듯한 영상은 난민 문제를 우호적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계정은 스페인 북부에서 열리는 축제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계정이었으며 

계정을 만든 사람도 압두 디우프란 흑인이 아니라 평범한 스페인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넷에는 많은 정보가 흘러넘치지만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당연히 알려진 사실들조차 때로는 거짓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처 없이 떠도는 좋지 않은 뉴스들에 신경을 쏟지 말고 

변함없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십시오. 아멘!!

 

주님! 세상을 향한 귀를 덮고 주님을 향해서만 활짝 열게 하소서.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들을 분별없이 무조건 신뢰하지 맙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