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첫번째 부부에게 하신 명령!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땅,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하와의 창조계획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아담의 돕는 배필로 하와를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시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사람이 혼자사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죄가 들어오기 전에 “좋지 않은(not good)” 상황이 등장한다.
엄밀히 성경 전체에서 “좋지 않다”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 (very good)”라는 표현과는사뭇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분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좋다.
단지 창조 결과물만이 아니라 창조 과정도 항상 좋다.
그러므로 여기서 ‘좋지 않다’란 표현은 ‘나쁘다(bad)’란 의미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not completed) 창조를 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엄밀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창조를 마치신 후에 갑자기 깨달으신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하기 이전부터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으며
하와의 창조를 처음부터 계획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와를 창조하기 직전에 이 말씀을 언급함으로써
남자에게 배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자 하심이다.
또한 배필에 대한 필요성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창조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이다.
즉 혼자 살다 보니 여자의 필요를 느낀 남자가 하나님께 부탁함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닌,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과 뜻 안에서 여자가 창조된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창조 여섯째 날 동안의 사건
지금 다루는 본문인 창세기 2장 18절부터 하와의 창조가 등장하는 부분까지의 기록은
모두 창세기 1장의 여섯째 날인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엄밀히 창세기 2장 전체가 여섯째 날 하루 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창세기 1장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시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같은 날 창조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창세기 1장과 2장 전체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는 말씀에 이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라며 자녀를 낳으라는 명령을 하셨다.
아담 혼자서는 결코 자식을 낳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첫번째 부부에게 하신 명령이다.
이어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고 마무리하신 것도
역시 첫 부부가 여섯째 날이 끝나기 이전에 창조 되었음을 분명히 한다.
또한 여섯째 날을 하나님께서 마무리하실 때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창 1:31)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분명히 창조의 완성에 대한 선언이다.
즉 하나님께서 태초 이전부터 계획하셨던 창조의 전체 그림 이하와의 창조로부터 완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창조 이전부터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음’을 아셨던 하나님께서
이런 ‘좋지 않은 상황’을 오래 기다리며 낭비하셨을리 없다.
창조의 완성에 대한 상황은 창세기 2장 전반부에 창조를 마친 후와
안식하셨던 일곱째 날의 묘사를 보아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아래 구절을 읽어 보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2:1~3)
반복된 단어를 통해 그 문단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할 때,
위의 말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all) 일을 마치시고(completed)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창조를 마쳤기 때문에 여섯째 날 이후부터는 어떤 창조도 필요 없다.
성경은 하와가 아담이 창조된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하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의 완성에 대한 마침표였던 것이다.
진화론의 가장 맹점 중 하나는 생물들의 ‘암수가 동시 발생’해야 하는 극적인 상황이다.
최초의 생물이 자연 발생하여 진화하는 과정 가운데 필수적인 조건은 암컷과 수컷이 동시에 등장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생물의 암컷이나 수컷 중에 하나가 우연히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일생을 마감하기 전에(!) 교배의 상대가 곧바로 등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세대를 낳지 못하므로 그 생물은 멸종하기 때문이다.
이런 도저히 불가능한 과정을 단지 한 생물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그것도 진화 과정 마다 매번 적용해야 한다.
참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진화론을 단지 두 단계만 내려가도 수용 불가능한 허술한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허술한 진화론을 수용하므로 진짜 역사인 성경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 허술한 수십억 년의 진화역사를 받아들이자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이다.
만약 이들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지금 언급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화론의 모순을 그대로 수용하는 가운데 성경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에게 아담과 하와는 언제 어떻게 창조된 것일까?
유인원들의 생존경쟁 과정 가운데 아담이 창조되었을까?
하나님께서 생존경쟁, 적자생존, 자연선택 등의 진화과정을 허용하시다가 어느 순간에 하와를 만드신 것일까?
아담은 진화하는 수백만 년 동안 혼자서 외롭게 살았을까?
그러면 그동안 자식은 어떻게 낳을 수 있을까?
성경에 ‘생육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러나 성경을 그대로 수용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완벽하게 설계된 환경, 이 환경에 살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설계된 생물들,
셋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각 생물의 암수의 동시 창조,
마지막 여섯째 날 창조된 아담과 하와,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처음, 생육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일곱째 날 모든 것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하나님….
우리는 진화론의 모순을 알뿐 아니라, 성경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이 성경 기록이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진정한 역사적 사실임을 믿는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자신들의 판단과 행위를 성경의 진리보다 높다고 하는 자세이다.
그러므로 결국 성경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부딪힐 돌, 바로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부딪히고 만 것이다.
성경은 이와 같은 이들에게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다.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부딪힐 돌에 부딪쳤느니라”(롬 9:32)
Best Cities for an Art Degree
창조과학선교회
Association for Creation Truth
?HisArk@gmail.com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고린도전서 10:12-22
캐나다의 윌리엄 홀 박사는 기도하던 중 선교를 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한국으로 떠나라”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한 윌리엄 박사는
평양에 와서 콜레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병을 고쳐줬음에도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쫓겨나 방방곡곡을 떠돌던 윌리엄 박사는
배척을 받으면서도 밤낮없이 환자들을 돌보다 과로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고생만 하다 떠난 남편을 지켜본 아내 로제타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한국에 남았습니다.
로제타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세웠고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확충하며 40년이 넘게 한국을 떠나지 않고 선교를 하다 한국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부모님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아들 셔우드는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가 되어 아버지처럼 한국에 의료선교를 왔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 쫓겨나 결국 인도로 사역지를 옮겨야 했지만
셔우드는 부모님이 사명을 따라 모든 것을 바친 한국 땅을 항상 그리워했습니다.
모든 삶을 주님을 위해 바치는 진정한 사명자의 모습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며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므로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떠올리며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할 복음의 사명을 위해 삶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목숨을 잃더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사명을 허락하소서.
일생을 통해 이룰 사명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로 간구합시다. <김장환, 나침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