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지리산, 홀로 걷는 길

안규수 2021. 10. 11. 15:18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올라섰다. 많은 산악인이 '한국인의 기상이 이곳에서 발원되다'라는 정상 비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야호' 하고 탄성을 질러댄다. 수많은 봉우리와 능선들이 푸른 바다의 물결처럼 출렁인다. 이 신비로운 풍경 앞에서 새로운 피안의 세계로 들어섰다.

  1970년대만 해도 산 아래에서 바라본 천왕봉은 푸른빛이 감돌아 말 그대로 신비가 서려 있는 영봉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에 풀 한 포기 없어 영산은 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오는 산길 곳곳이 움푹 패고 나무뿌리가 알몸을 드러낸 채 하늘을 쳐다보며 신음하고 있었다. 내 발길도 거길 지나고 더럽혔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 연둣빛 신록이 날로 짙어갈 무렵이었다. 노고단 산장에서 일박 후 먼동이 터올 무렵, 멀고 먼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다. 오로지 홀로 걷는 길이다. 인적 없는 오월의 푸른 계곡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바람 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뿐, 군데군데 한그루씩 피어 있는 분홍색 철쭉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 준다.

  홀로 걷는 길, 외롭지만 수많은 상념이 성숙해 주어서 좋다. 산중에는 산마루를 넘어가는 흰 구름, 바람에 흔들리며 춤추는 풀과 나무들이 기쁨에 들떠 있다. 덩달아 발걸음이 빨라진다. 왜 기쁘냐고, 다만 마음이 즐거울 뿐, 말로는 무어라 형언할 수가 없다.

  휘어져 감기듯 뻗친 능선이 반야봉에서 부드럽게 뭉치면서 솟구쳐 올라 멀리 노고단을 바라보고 있고 반야봉은 양팔을 벌리고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하고 있다. 아름다운 산길로 정평이 난 임걸령에서 노루목까지의 오붓한 산길을 걷는다. 땀이 비 오듯 흐르니 차라리 소금 길, 고통의 길이다. 지리산 길은 바로 인생길이다.

  노루목을 지나 반야봉 아래 너덜겅 지대를 통과하여 삼도봉에 도착했다. 이곳은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접경 지역이다. 삼도에서 지역감정을 타파하자는 뜻에서 삼도비(三道碑)를 세웠다고 비문에 새겨져 있다. 이미 육화된 지역감정을 타파해보려고 노력한 것은 가상한 일이다.

  길을 재촉하여 화개재에 도착하여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이곳은 그 옛날 남원사람들과 남해 사람들이 곡식과 해산물을 물물교환하던 장터였다. 몇 년 전 만 해도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발걸음에 거칠고 피폐한 곳이 다시 푸른빛이 돌아 회복되고 있었다.

  토끼봉 정상을 향해 걸었다. 해발 1,200여 미터의 화개재에서 1,500의 토끼봉은 유난히 높아만 보였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 1985년 여름에 친구 너덧 명이 처음 이 능선을 오르던 때가 생각났다. 세월은 마치 유수와 같다. 그때 함께 했던 벗들은 지금 내 곁에 한 사람도 없다. 벌써 둘은 먼 길 떠났고, 나머지는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르고 내리는 산의 기복이 고난과 기쁨이 부침하는 인생을 닮았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포기하고 싶어도 참고, 오르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구슬땀을 쏟으며 오르고 또 올랐다.

  다시 연하천 산장을 향해 크고 작은 비탈을 오른다. 길가에 철쭉 외에 수많은 우리 꽃들이 웃으며 반겨 주었다. 저마다 나름의 독특한 모습이 경이로웠다. 자기 특성을 한껏 발휘하면서 내면이 지닌 가장 맑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요소들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 산장에 도착했다. 밀림과 고사목 사이로 떠오르는 달이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는 벽소명월을 볼 수 있다는 벽소령을 뒤로한 채 산길을 재촉했다. 몸에 피곤이 몰려온다. 이럴 때 말동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절로 든다. 외로운 것은 당연하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걷는 길이다. 외로움을 즐기려고 찾은 길이지 않나. 외로움을 잘근잘근 씹으며 층층나무 계단에 힘겹게 올라서니 영신봉 정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무와 바위의 아름다운 절경이 피로를 녹여주었다.

  붉은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저 멀리 반야봉을 넘고 있었다. 산정을 휘어 감는 고요함과 적막감. 나무들이 바람에 꿈틀거리며 어둠을 받아들이고 있다. 가부좌를 틀고 암벽에 몸을 맡긴다. ‘라는 수많은 망상이 저 산 밑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하여 오늘 밤 숙박할 곳인 세석산장에서 짐을 풀었다. 깊은 밤, 산장의 창문을 두들기는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거친 바람 소리, 여기저기서 드르렁드르렁 코 고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날씨도 상큼하고 몸도 가볍다. 세석평전에 오르니 저 멀리 천왕봉이 의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너른 분지가 고즈넉이 날 반긴다. 세석은 연분홍색 물감을 군데군데 들어부은 듯 철쭉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뻐꾹새도 구슬프게 울어댄다.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이 세석평전에서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빛깔로 남아 철쭉꽃밭을 태우는 것을 보았다는 송수권 시인의 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반야봉이 허리에 안개를 휘감고 아득하게 서 있다. 그곳에 남녀대학생들 대여섯 명이 쉬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종주 산행을 한다니 기꺼웠다. 요즘 젊은이들 그저 편한 것만 쫓는 줄 알았는데 이런 불편과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지리산의 영기를 몸으로 느끼고 껴안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러웠다.

  다시 숨 가쁘게 길을 재촉한 끝에 연하봉에 도착하여 북사면 쪽을 바라보니 안개 바다 저쪽에는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천왕봉의 턱 밑인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걱정하고 있을 아내에게 간단히 메시지를 남기고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길을 올라 제석봉 정상 북쪽 면과 중봉 사이 평평한 능선은 고사목과 녹음이 우거져 있고, 한줄기 안개가 휘감아 돌고 있었다. 넓고 높고 푸르고 푸르다.

  통천문을 통과해 천왕봉 어깨쯤에 발을 딛고 올라섰다. 드디어 속세에서 신의 세계로 올라왔다는 감격에 젖는다. 신은 거기서 내려오고 나는 오른 것이다. 이제 속세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를 위해 이틀 동안 흘린 땀방울이 얼마였던가. 오직 한 발자국 전진하는 일만이 남았다. 신의 영역에 올라야 한다. 이번 산행의 정점은 천왕봉이고, 나는 지금 여기 통천문에 서 있다. 천왕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노고단에서 출발해 꼬박 이틀을 쉬지 않고 외롭게 산길을 걸어 온 나를 따뜻한 손길로 맞아 준 마고할미의 사랑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천왕봉을 뒤로하고 중산리를 향해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 또한 올라온 길 만큼 힘들다. 칼바위까지 내려와 평평한 치마 바위 위에 잠시 앉았다. 계곡에서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피곤한 몸이 난타하는 물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찬물로 얼굴을 씻으니 몸이 한결 가뿐해진다. 몸과 마음이 신선이 노니는 곳에 다녀와서 그런지 새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분이 산뜻했다. 노르스름한 밤꽃의 알싸한 향기가 나를 반겨준다. 준엄하면서도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구름에 휘감긴 천왕봉을 올려다보았다.

  ‘산속의 풀꽃이 자신의 구름 낀 눈꺼풀을 벗겨 열어준 다음에야 메마른 자신의 영혼에 고요가 스며들었다라는 어느 시인의 시를 음미하면서 잠시 내려놓은 세속의 배낭을 다시 짊어지고 나의 유토피아를 향해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