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이팝나무꽃 필 무렵

안규수 2021. 10. 11. 16:39

 

   꽃봉오리처럼 아름답던 날도 잠시 한순간이다. 집을 떠날 때는 아파트 담장에 줄지어 선 이팝나무꽃이 활짝 피었더니,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오자 신부처럼 순결하고 고운 꽃이 어느새 다 지고 없다. 백설처럼 흰 꽃의 은은한 향이 좋아 봄이면 언제 필까 기다려지는 꽃이다.

  새삼 그 꽃이 피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 같다. 존재가 영원하지 않은 것은 순간순간 변하기 때문이다. 어떤 존재든 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꽃봉오리도 잠시 머물다 금세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지 영원하다면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인도 고대 서사시 <마하 바라다>에는 죽음의 호수에서 다르마의 질문에 유 디스 티라가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르마가 묻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유 디스크라는 대답한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지요.”

장맛비가 그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낮잠을 즐기고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어지러워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내가 걸을 수가 없다니, 병원으로 가기 위해 아내의 부축을 받아 차에 오르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병원 도착 즉시 각종 검사가 진행되고 곧바로 응급 시술이 이뤄졌다. 며칠이 지난 후 병실을 찾은 담당 의사가 긴 잠에서 막 깨어난 날 일으켜 세우더니 걸어 보란다. 순간 긴장했다. 만약 걸을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조심스럽게 천천히 걸었다. 아내의 얼굴빛이 밝아지고 입가에 엷은 미소가 흘렀다.

  입원실에는 뇌중풍으로 쓰러져 목을 뚫어 음식물을 투입하고 코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는 중환자가 여럿 보였다. 비극은 그런 환자 대부분이 말을 못 할 뿐이지 뇌는 살아 있어 의식이 있다고 한다. 가족이나 친지들의 문병 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족들의 고통은 말로 헤아릴 수 없다. 이태 전 친구 어머니가 뇌중풍으로 쓰러져 3개월쯤 병원에서 치료하다 연명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모셨더니, 눈을 뜨고 마지막 유언을 하시더란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퇴원하는 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한낮 쏟아지는 햇볕에서 삶에 대한 강한 열정이 느껴졌다. 내 병은 뇌경색이다. 의사는 오랜 기간 앓아온 당뇨가 원인인 것 같다고 말하고 발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한동안 무척 당황했다.

  한창 일할 때인 서른 후반쯤이었다. 이유 없이 체중이 빠져 병원을 찾은 후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젊은 사람이 당뇨병이라니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때부터 틈만 나면 평소 즐기던 산행을 더 열심히 했다. 젊음이 한창인 시절, 꼬박 이틀 밤 사흘 낮을 걷고 걸어서 지리산 산등성이를 죽을 둥 살 둥 오르내리며 흘린 땀이 얼마였든가.

  20대 초반에 월남전에 참전하여 1년 반을 정글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살아 돌아왔다. 작전 중 미군 수송기가 뿌연 가랑비를 뿌리며 지나가면 더위에 지친 병사들은 그 비를 일부러 맞곤 했었다. 이 비는 억척스럽게 달라붙어 피를 빨던 모기들을 잠시 피할 수도 있었다. 그때 내린 비가 나무 잎사귀를 말려서 죽이는 고엽제, 죽음의 비란 사실은 귀국 후 수년 이 지난 뒤 알았다. 이 고엽제가 당뇨의 원이라는 것도.

  병원에서 퇴원하고 고향 선영을 찾았다. 훌쩍 자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반갑게 맞이한다. 둥치가 내 몸통만 하고 가지가 하늘을 찌를 듯 무성하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가 손수 심은 소나무, 아버지 가신지 무려 반세기가 흘렀다. ·비 바람 견디고 홀로 산소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대견했다.

  엄마 묘소 앞에 앉아 있으니 생전 엄마와 웃고 울면서 지낸 풋풋한 순간들이 구름처럼 머릿속을 떠다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늘 하던대로 엄마에게 이번 병을 얻어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일을 고했다. 내 등을 쓰다듬던 엄마 손길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린 시절 모처럼 시장에 가신 어머니가 한낮이 기울도록 돌아올 기척이 없을 때, 시간은 왜 그토록 더딘 거름을 친 것일까? 동구 밖까지 나가서 내다보는 골목길, 저만큼 시간은 연신 기지개만 켜고 있었다. 그 시간이 내 가슴속에서 요동친다. 그 시간은 눈 한 번 깜박거릴 정도의 짧은 순간이었다.

  이번 일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시시포스의 비극은 돌을 들어 올리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힘겹게 밀어 올리는 돌이 다시 굴러떨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두려움도 이런 이유에서 오는 것인지 모른다. 퇴원하는 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앞으로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재발할 우려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받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매일 30분 이상 걷고, 약은 꼭 제시간에 드셔야 합니다.”

  한평생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살아왔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번에 알았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