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맺히기를 원하는 열매가 무엇인지 한번 확인해보십시오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마귀의 역사를 이기려면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나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갈 5:24
또한 마귀의 생각을 물리쳐달라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마귀의 생각을 반드시 대적해야 합니다.
이것은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탐심과 정욕을 내 것이라고 품으면 안 됩니다.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도 안 됩니다.
우리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 이름으로 대적해서 내쫓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에게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마귀가 교묘하게 마음속에 파고드는 순간을 알게 됩니다.
영적으로 잠든 상태였을 때는 마귀가 들어와 역사하는 순간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나중에 마귀의 열매가 마음에 맺히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혈로 정결함을 구하고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 안에 마귀의 역사를 분별하는 감각이 자랍니다.
그래서 마귀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을 때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지금 마귀가 나를 넘어뜨리려고 역사하는구나.’
이것을 분별하여 깨달으면 이깁니다.
주님은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능히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마귀를 대적할 뿐 아니라 성령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간다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중에
자신에게 맺히기를 원하는 열매가 무엇인지 한번 확인해보십시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주님이 여러분에게 맺어주실 열매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마귀가 맺은 열매가 있는지 한번 점검해보고,
반대로 나에게 필요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점검해보십시오.
“하나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지금 저에게 정말 필요한 열매는 이 열매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그 열매를 구했더니 결국 그 열매가 맺혔다고 간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자신이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런 열매를 맺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 요 15:4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요 15:5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결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교회만 열심히 다녔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셔야 그토록 소원하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열매가 없어서 나중에 버림받게 됩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요 15:6
우리가 정말 예수님 안에 거하기 원하면 우리 속에 사랑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압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없던 사랑이라는 것을.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서 경건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다 실패합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중요한 일도 감당하고 있는데 얼굴이 굳어져 갑니다.
실제로는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신앙으로는 기쁨도 사랑도 온유도 열매 맺지 못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면에 사랑, 희락, 오래 참음, 자비, 충성, 온유,
절제의 성령의 열매가 많이 맺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쉽게 분별됩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시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음을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라, 유기성 / 규장
† 말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장 23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골로새서 3장 15절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에베소서 6장 18절
† 기도
주님.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의 생각을 분별하고 벗어나기 원합니다.
더는 죄의 종노릇 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주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들은 보혈로 씻어주십시오.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분별하게 하시고, 오직 성령님의 생각을 품고 순종하게 하여 주십시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고린도후서 5:11-21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미국 문학사에서 천재로 불린 토마스 울프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소설의 내용입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성공을 꿈꾸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큰 꿈을 품고 도시로 떠난 소년은 인고의 세월 끝에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백만장자가 되어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학식도 쌓았으며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바라던 모든 것을 성취하자
이제 그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어린 시절 떠나왔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던 앳된 소년은 머리가 희끗한 신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두 눈에 담긴 고향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거리는 자기가 떠나온 도시와 다를 것이 없었고, 사람들의 인심도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변해버린 고향에 실망한 남자는 이런 말을 남기고 다시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나는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영원히 돌아갈 길은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꿈과 바람을 위해 신앙을 타협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주신 삶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보다 값진 삶은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삶보다 주님 안에서의 삶을 더욱 귀하게 여기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복음만큼 값진 것이 없음을 알게 하소서.
세상에서 유일한 생명의 길을 결코 벗어나지 맙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