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당신의 이름을 알지 못하게 하라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선교 초창기 원주민 선교를 시작하여 첫 원주민 마을에 들어갔을 때,
예배는커녕 복음을 이야기하기도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냉랭하기만 한 그곳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난감했었습니다.
기도로 지혜를 구하던 중,
아이들의 온몸에 상처가 많고 전혀 치료하지 않았는지 곪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미뤄두고, 앉아서 고름을 짜고 치료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마다 가서 5시간씩 그 일을 1년간 했습니다.
나중에는 소문이 났는지 옆 마을에서도 찾아와 사람이 많아져서
5시간 내내 쉴 틈 없이 고름을 짜내고, 닦고, 약을 주고, 기도한 후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1년간 하다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선교사인데 복음은 증거하지 않고 지금 뭐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며,
이제는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찾아간 마을에, 웬일인지 마을의 대표급 되는 사람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1년간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회의를 했는데, 당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인 것을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1년이나 매번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우리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뭐가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뭐가 하고 싶은 것 같냐는 제 질문에 그들은 “당신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거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원주민 마을의 대표는 예배당을 세울 땅 6천 평을 주고, 나중에는 그 예배당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도리어 밖에서 예배 드리는 사람이 더 많아진, 원주민 마을 1호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를 통해 더 깊은 원주민 마을로 들어가 전도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면했고,
지금까지 세워진 180 교회 중 3분의 1이 원주민 마을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주민 아이들의 고름을 짜낼 때 제일 난감했던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고름을 짜내는 나를 때리며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아프니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들을 보며 ‘왜 이 아이들은 고름이 이렇게 찰 때까지 가만있었는가?’
잘은 모르지만, 아마 고름을 짜낼 때보다 고름이 차는 동안 겪은 고통이 현저히 적거나,
아예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미해서 그대로 방치해두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전혀 고통 없이,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달콤하게 우리 안에 들어와, 마치 자기 집인 양 자리를 잡습니다.
하지만 그 죄를 우리 안에서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심지어 그 죗값이 얼마나 큰지,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뤄낼 수 없어,
주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피로 그 죄를 씻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주님의 손을 때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주님의 치유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주님이 만드신 우리의 존재 안에 죄는 원래부터 우리 안에 있으면 안 될 이물질입니다.
그럼에도 매 순간 우리는 그것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탐닉하기도 합니다.
이제 짜내야 합니다. 닦아내야 합니다.
더 이상 내 안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우리 안에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꽉 찬 물컵에는 더 이상 다른 물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내 안의 성령 충만! 더 이상 죄의 자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 녹슬지 않고 닳아 없어지길 원합니다, 임동수 / 규장
† 말씀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 예레미야 5:25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 잠언 8: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시편 1:1
† 기도
주님. 거룩의 표현치 못할 기쁨을 알게 하소서.
죄가 얼마나 치명적이고, 나쁜 것인지 우리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악을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을 주셔서,
요셉처럼 악을 피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순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정직한 영을 부어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죄가 당신의 이름을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몰랐으면, 죄의 유혹도 모를텐데, 한번 죄를 짓고 나면 그 죄는 당신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훨씬 강하십니다.
덫과 같은 죄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하며, 성경 말씀을 충분히 읽으며 기도하십시오.
완전히 자유케 하시는 성령충만이 임할 것입니다.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로 자유케 되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당신이 되길 축복합니다.
계속된 회개가 죄를 이기게 합니다. 온전케하시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중국 진나라의 마부 손양은 명마를 보는 눈이 탁월했습니다.
손양이 점찍은 말은 가격이 열 배나 뛰어서 사람들은 그를 말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뜻의 ‘백락(伯樂)’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손양이 마을 어귀를 걷다가 허름한 소금 수레를 끄는 말과 마주쳤습니다.
보자마자 명마라는 것을 느낀 손양은 말을 여기저기 살펴봤는데 영락없는 천리마였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무릎은 꺾이고 꼬리도 처져 있었습니다.
“아니, 이런 명마로 왜 소금 수레를 끌고 계십니까?”
“나는 그런 것을 잘 모릅니다. 십 년 전에 수레나 끌려고 아무 말이나 사 온 것입니다.”
손양은 안타까운 마음에 주인을 잘못 만난 천리마를 끌어안고 울며 입고 있던 비단옷까지 덮어줬습니다.
이 일화는 ‘기복염거(驥服鹽車)’라는 사자성어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끌며 삶을 낭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삶은 아무리 성공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나의 주인이자, 구원주이신 주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을 위한 삶으로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아멘!
주님! 오직 주님께만 더욱 집중하게 하소서.
세상에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서만 살아갑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