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작가와의 대담 내용
에세이스트 55호 합평회는 경기고 구리시 구리아트홀에서 열렸습니다. 세계적 '빛의 화가' 방혜자선생님께서 고 박완서작가님과의 인연을 담아 전시를 작품 하고 있는 갤러리에 저희 에세이스트를 초대하셨습니다. 이 뜻깊은 자리에서 55호 합평회를 하며, 이번 문제작가로 선정된 안규수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대담자 : 지은희, 조성현
(시작 - 조성현) 이번 55호에 안규수선생님의 특집에 대해 “글 참 좋다”는 말을 여러분들로부터 들었습니다. 다른 문제작가들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이번도 메우 좋았다는 평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같습니다. 감동을 받았지요. 그 동안 안규수선생님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 못했던 독자들은 이번에 선생님의 팬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비유가 있으나 지나치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습니다. 묘사와 비유가 글 속에 잘 녹아나고 있습니다. 서사에 서정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1. 「손가락 총」에 대한 질문.
손가락 총이 무엇인지 설명이 필요합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예전에는 여수순천반란사건이라 했는데 그 지역 주민들의 요청에 의해 수정됨) 당시 좌익의 반란군이나 우익의 토벌대가 반대측 인사들과 다수의 무고한 양민들을 살해할 때, 손가락을 겨누면 그 사람은 즉결처형이 되었습니다. 정당한 법적절차가 무시된 살인현장이었지요. 차거운 쇳덩이 총보다 더 무서운게 손가락총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후에도 여러 사건에서 이 손가락총에 희생된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는 이념과 권력에 의해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 여럿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제주4.3, 여수순천사건이 있고 근래에는 광주5.18민주화운동이 그것입니다. 다른 사건은 문학에서 다뤄왔지만 여순사건은 찾기 어렵습니다. 특히 수필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무 오래된 사건이어서 실제 경험을 한 수필가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이 글에서는 선생님 가족의 비극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을 뿐 아니라, 비록 좌익 반란군에 의해 작은 매형이 비참하게 희생되었고, 작은 누님도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좌우 어느 쪽 이념에도 치우치지 않은 균형된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선생님께서는 가족의 아픔 외에 다른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했는지요? 또한 글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규수)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학교운동장에 끌려가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말씀 이외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큰어머니의 생생한 증언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내 고향 벌교를 수없이 드나들면서 그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고 이야길 들었습니다. 희미한 증언이었지만 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여순사건의 이면과 이 땅의 농민들의 서러운 삶을 알게 된 것은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입니다. 태백산맥은 최초의 분단문학이고 반공의 금단을 깬 최초의 소설로 내 고향 벌교가 중심 테마입니다. 좌익은 순결형, 우익은 패륜아로 그려지고, 못가진자 즉 가난한 농민과 소작인들의 삶을 정조준해서 그들의 편에서 이 소설이 써졌기에 86년 책이 출간되고 나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소설을 문학작품으로 보지 않고 역사 그 자체로 인식하려는 문화 풍토 탓도 있었지만 당시 실제인물을 극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 뜨거웠습니다. 아버지가 이 난리를 만난 것이 50대 초반입니다. 당신이 백척간두의 죽음 앞에서 간신히 살아났고 그 뒤에 세상이 바뀔 때마다 처절한 피의 보복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런 참상을 목격한 아버지의 삶은 피폐해져 갔고 오직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체념과 침묵의 강으로 깊이 빠져 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존법칙은 무엇을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살아도 죽은 척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지주는 아니어도 30 여 두락의 논을 가진 부농으로 머슴 둘을 두고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동내에서 부잣집으로 통했죠. 그 당시 머슴들의 행패도 극심해서 주인을 악덕지주로 몰아 처형한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운동장에서 손가락 총을 당하지 않은 것은 작은 매형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요. 매형은 우리 집에서 머슴살이 하다가 작은 누나와 눈이 맞아 그때 갓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 뒤, 예쁜 색시를 두고 입산할 수 없었든 그는 결국 배신자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당시 지주들의 수탈로 배고픔에 허덕이든 농민들에게 그 알량한 이념이라는 것,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었을 뿐더러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배고픔만 해결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았습니다. 여순사건 5일 천하 때 소작농민들은 농지를 분배해 준다는 말에 반군에게 동조하게 되고, 결국 빨치산이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해방이 후 일제잔재의 청산, 토지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실패가 빚은 참상이었죠. 나라가 빨갱이를 만든 것입니다. 조정래 선생님은 ‘이즘이란 것이 정치지향적인 인간들이 만들어 낸 허상, 즉 변증법도 유물론도 봉건주의도 민주주의도 모두 정치지향적인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이기적인 지배 도구일 뿐이지 결코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대사에서 나는 내 가족이 겪은 고난을 작품을 통해 세상에 드러냄은 죄 없는 이 민중의 아픔과 한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은희)
우리는 수필은 실제이고,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을 꾸며 쓴 이야기라 말합니다. 그런데 에세이스트55호에 실린 안규수 선생님의 글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가락 총>이 그렇고, <아버지>, <두 여인> 등 모두가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늘 선생님과 나눌 이야기는 작품의 소재가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향집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향집은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한 본연의 것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선생님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의 서사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2.「아버지」에 대한 질문 (지은희)
「아버지」는 아버지에 대한 단상이지만 화자의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단순한 회상의 글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 작가의 관계를 통한 작가의 성장기로 보여집니다. 이 글은 작가가 16살에 평생 유기장이며 천도교도였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면서 시작되고 있는데요. 서사수필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고로 다쳐 돌아가시게 되는데요. 아버지의 뜻이기도 하고,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병원에 모셔가지 않는 형과 형수에 대한 원망과 갈등, 마음속으로만 애태우는 어머니, 이런 광경을 어쩌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하는 소년 시절 작가의 내적 갈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화자가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는 일도 다루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소를 끌고 풀을 뜯기러 나가는 순간 아버지의 대견스럽고도 걱정스러운 눈빛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그 순간은 작가분의 인생에 있어서 책임감과 홀로서기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 된 시점이라 생각되는데요. 아버지의 사랑의 눈빛이 있었기에 작가가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은 아버지의 면면을 독자에게 보여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아버지와의 관계, 그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성장기를 보냈고,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힘으로 지탱해 온 작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매순간 아버지의 어떤 목소리가 가장 힘이 되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일찍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어떤 점이 두고두고 삶을 비쳐주고 있는지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안규수) “패널께서는 서두에 실제라기보다는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내 작품 속에서 전개되는 스토리가 리얼하게 묘사 되어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이번 작품을 읽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저의 일생은 큰 어려움이 없는 순탄한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삶이 나에게 미친 영향이 컸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놈한테 뒤지지 말고, 척 지지 말어’ 이 말씀을 늘 상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인생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 것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강조 하신 것인데, 아버지의 삶이 짙게 배어 있는 말씀입니다. 형 이야길 안할 수 없는데요, 아버지가 마지막 가시던 날 난 형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장남인 형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내 손을 잡으시고 먼 길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도 인간인데 어찌 생명에 대한 애착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형수와의 다툼 등, 집안 분위기를 알고 계셨고, 아버지는 그런 형을 무척 서운하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형은, 형수 때문이긴 하지만 아버질 병원에 모시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자책하고 후회하다가, 마흔하나에 암으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3. 「두 여인」에 대한 질문 (지은희)
「두 여인」은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변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런 보물같은 이야기를 많은 독자들과 나누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셨던 것 같은데 이런 귀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신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글 중에서 인상 깊은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엄마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만, 두 엄마의 아들이었다. 엄마에게 가면 큰엄마에게서 멀어졌고 큰엄마에게 가면 엄마에게서 멀어졌다. 두 여인 사이엔 아버지보다도 내가 있었다. 내가 둘을 잇는 끈이면서 동시에 둘 사이의 벽이었다. 그것이 나의 남다른 정체라면 정체다. 이러한 남과 다른 나의 정체에 눈을 뜨게 한 이는 언제나 엄마였다.’
여기에서 느껴지는 것은 작가분의 갈등도 갈등이지만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주신 어머니의 갈등과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품에서 보면 길러주신 어머니와의 관계는 끈끈하게 드러나는 반면 낳아주신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훗날 이해하게는 되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항상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왔다는 식으로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머니에 대한 이해의 마음이 싹트게 되었는지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안규수) “어릴 적 큰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마실 을 나갈 때 마다 언제나 ‘내 새끼’ 라고 날 부르셨습니다. 그 말 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데, 작은집에서 난 아들이 아니고 정실인 자신이 난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서얼에 대한 차대가 조금은 남아 있을 때였으니까요. 큰 엄마는 날 당신이 난 아들로 여기고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주셨습니다. 날 낳아준 엄마는 당연히 큰집만 싸고도는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고요. 제가 장가들고 직장을 다닌 후 부터 날 낳아 주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제가 딸 하나에 아들이 셋으로 사남매를 두었는데, 어머니의 손자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손자들을 키우면서 무척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정작 이 못난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은 돌아가신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불효막심한 아들입니다.”
4. 「옛집」에 대한 질문 (지은희)
「옛집」에서 작가는 고향집과 고향을 둘러보며 떠오르는 단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고향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시 찾은 고향집은 잡초만이 무성하고, 주변에 있는 절은 예전에는 여느 유명한 절 못지않는 규모 있는 큰 절이지만 지금은 전설로만 남은 황량한 절터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 화자의 곁을 떠나간 가족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화자는 이런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역사의 흔적은 오롯이 작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고, 이것이 곧 자신이라 말합니다. 저는 이러한 작가의 의식을 통해 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주의 역사가 덧대어져 온 오랜 시간을 통한 결정체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옛집>을 통해 이러한 삶의 통찰 외에도 어떤 면을 그려내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선생님의 멋진 손자를 몇 번 본 적이 있는데요. 손자에게 어떤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안규수) “고향으로의 회귀, 그것은 곧 동심으로의 회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네 편의 수필을 쓰면서 고향을 자주 찾았습니다. 허물어질 듯 낡은 옛집에 들릴 때 마다 마치 어머니 품안에 안기는 듯 그렇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내 영혼이 정화되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래서 감히 수필은 힐링문학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수필이 발표되고 우리 가족이 받은 충격은 예상대로 컸습니다. 모두들 읽고 눈시울이 뜨거웠다고 했습니다. 가족들로 부터 왜 그런 이야길 이제 해 주시냐고, 원망도 들었습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가 겪은 고통은 우리들만의 고통이 아니고 내 이웃들이 함께 겪은 고통이었기에 내가 아니면 영원히 묻혀버릴 진실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고, 나의 아들딸들과 손자들이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작품을 섰습니다. 손자들에게 좋은 수필집 한 권 남겨서 멋진 할아버지로 기억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늘그막에 수필을 만나 무척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5. 작품세계에 대한 질문 (조성현)
선생님의 이번 작품들은 기존에 발표했던 작품들과 차이가 있습니다. 「눈 세상, 한라산에 오르다」 「시, 인생 그리고 지리산」 「산이 거기에 있기에」 「새벽닭 우는 소리」 「고매, 꿈결 같은 향기에 취하다」 「눈 내리는 날」에서 선생님은 산과 자연을 노래하며 시도 읊고 인생도 논했습니다. 서정성이 물씬 풍겼지요. 에세이스트 49호에 실린 「이런 고백」은 예외이지만요. 그런데 이번 네 편 작품 중 세 편은 선생님 가족 이야기를 결코 잔잔하지 않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서사적 수필인 셈이지요. 제목도 기존 작품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서정성이 강한 글을 쓰는 작가는 서사적 글을 쓰기 쉽지 않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마다 글에서 풍기는 맛이 대부분 일정합니다. 그래서 어느 작가의 첫 작품집을 읽고 나서, 두 번째 작품집을 읽으면 소재만 다를 뿐 거의 같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면 다른 작가로 오인할 수도 있습니다. 상당히 바람직합니다. 양쪽을 넘나드는 선생님의 필력은 작가로서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한 것인지요? 선생님께서는 평소 수필문학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하시고 습작은 어덯게 하는지, 다른 작가 선생님들을 위해 말씀해 주십시오.
(안규수) “저는 서정과 서사를 특별히 구분해서 수필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고 구상이 끝나면 주로 새벽시간을 이용해서 작품을 씁니다. 저의 초기의 작품 중에는 서정수필이 많았으나 지금은 서사수필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실명을 거론해서 송구합니다만, 저가 좋아하는 작가는 ‘버들피리’의 이민혜님과 ‘누비처네’의 목성균님이십니다. 그분들의 작품은 우선 읽기가 편할뿐더러 재미 또한 쏠쏠하고 사실적 표현기법과 작중 인물의 심리묘사가 탁월해서 그분들의 작품처럼 쓰고 싶은 욕심 대단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작품을 실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저의 수필쓰기의 키워드는 ‘고치기’입니다. 저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고치는 것입니다. 일단 주제를 놓고 붓 가는대로 써서 묵혀 두었다가 다시 붓을 들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 작품에 몰두해서 수없이 고치고 또 고칩니다. 그러길,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합니다. 오직 저는, 이찬웅님의 저유명한 ‘나는 학생이다’라는 표제처럼 앞으로도 학생일 뿐입니다.”
5. 수필계의 발전을 대한 질문 (조성현)
다수의 수필가가 배출되고 있지만 수필문학은 ‘우리끼리’의 활동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필문학 발전을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한지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안규수) “며칠 전 카페에 ‘사인용 탁자’로 유명하신 김채영님이 에세이스트에서 늘 ‘외로움’을 느낀다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그 글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저도 가끔 에세이스트 행사장에 참석해서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아무도 몰래 살짝 빠져나가 밤기차에 몸을 싣고 시골로 내려갑니다. 저는 그저 그러려니 해서 별 서운한 감정은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이런 문제에도 신경을 써서 에세이스트의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또한 그런 일들은 자기할 나름이지 누굴 탓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말할 뿐이기 때문입니다.두서없는 저의 이야기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 - 지은희) 에세이스트 55호의 문제작가 안규수 선생님은 여러모로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역사적 사건을 냉철하게 직시하려 애쓰고 그것들을 글로 형상화하려고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한 이번 작품 속에서 가족사를 용기 있게 그려내어 독자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질문 외 안규수선생님 말씀)
* 기존 작품 제목을 보면 대단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데 제목은 어떻게 지으시는지... ==> “평소 시를 좋아해서 끼적거리기도 합니다. 어느 선생님은 수필을 솥에 넣고 폭 고아놓으면 시가 되고, 물을 많이 부어서 국물을 만들면 소설이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시와 수필은 상호 연관 관계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적 표현 같은 문장을 선호했습니다만 요즘은 그런 표현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있습니다.
* 작가의 블로그 이름이 <갈대꽃과 흑두루미>인데 갈대가 아니라 갈대꽃이고, 두루미도 그냥 두루미가 아니라 흑두루미라고 한 이유는? ==> “순천만 갈대밭, 10월이면 은빛 꽃물결로 가득합니다. 갈대꽃과 흑두루미는 그리움의 표상입니다. 철새는 찬바람이 불면 시베리아를 떠나 쉼 없이 남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고독한 비행을 합니다. 미래를 위한 비행, 짙은 꿈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철새가 도착 할 때쯤이면 갈대는 꽃을 피웁니다. 갈대밭은 은빛 물결로 출렁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절정이요, 울려 퍼지는 환희의 송가입니다. 늦은 가을 갈대밭에서 들어서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 그것은 갈대와 철새가 나누는 사랑의 밀어입니다. 애절한 몸부림입니다. 그 철새 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새는 흑두루미입니다. 긴 다리 흰색 바탕에 검은 색 옷을 입은 흑두루미는 멋 진 신사입니다. 당연히 갈대도 흑두리미를 좋아합니다. 늦가을, 용산에 올라 망원경으로 갈대숲을 바라보면 흑두리미와 갈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멋진 장면입니다.”
안규수선생님 작품을 읽고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선생님은 작가로서 매우 감수성이 뛰어나시고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많은 작품을 독자에게 선사해 주시기를 부탁그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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