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안규수
2022. 8. 20. 12:15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우리가 진실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마음 없는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신다.
오래전에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오래전에 어느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 일이다.
그날 장로님이 대표기도를 하셨는데, 기도가 장장 25분이나 이어졌다.
일종의 기도 설교였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망라하고 교회를 질책하는 내용이었다.
과연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까 싶었다.
왜 주님이 가슴을 치며 기도했던 세리와 같은 죄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을까?
과연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실까 싶었다.
왜 주님이 가슴을 치며 기도했던 세리와 같은 죄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을까?
미사여구 없는 진실한 기도였기 때문이다.
세리의 소통은 진실함이다.
세리의 소통은 진실함이다.
진실해야 마음이 열린다.
진실함은 간절한 것이다.
그것이 진리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간절히 기도한다.
간절한 기도를 이해하려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면 된다.
간절한 기도를 이해하려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면 된다.
자식의 문제로 기도하는 부모의 기도는 간절하다.
자기 문제처럼 기도한다.
나의 할머니는 신앙이 깊지 않으셨지만 식사 때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하셨다.
“우리 조 목사, 잘 되게 해줍사. 건강하게 해줍사. 교회도 부흥하게 해줍사!”
사투리 섞인 할머니의 이 기도가 생각날 때가 있다.
“우리 조 목사, 잘 되게 해줍사. 건강하게 해줍사. 교회도 부흥하게 해줍사!”
사투리 섞인 할머니의 이 기도가 생각날 때가 있다.
간절한 기도였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위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할까?
식사 때마다 레퍼토리 하나 바뀌지 않았다.
“우리 큰 아들, 작은 아들, 우리 큰 손주, 작은 손주, 잘 되게 해줍사.”
이 간절한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이다.
만약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했다면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
식사 때마다 레퍼토리 하나 바뀌지 않았다.
“우리 큰 아들, 작은 아들, 우리 큰 손주, 작은 손주, 잘 되게 해줍사.”
이 간절한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이다.
만약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했다면 응답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자신의 아이가 귀신이 들렸다면 제자들이 그렇게 사역하듯이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절한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연다.
간절한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연다.
아주 유치할 만큼 구체적으로 기도해보라.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누구 다른 사람 들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사여구는 필요 없다.
누구 다른 사람 들으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들려 드려야 한다. 중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듣고 응답하신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감동을 받으면 문이 열린다.
감동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내가 그 문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진실한 기도, 그 감동의 기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 계신데, 이분의 목회 성공의 비결은 설교가 아니다.
부산에서 가장 큰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 계신데, 이분의 목회 성공의 비결은 설교가 아니다.
이분은 설교를 마치고 나면 30분간 손을 들고 교인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한다.
“저 성도 아픈데… 저 성도 힘든데… 저 성도 어려운데… 저 성도 빚이 많은데… 저 성도 암 때문에 고통받는데….”
담임목사의 이 진실한 기도를 들으면서 교인들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담임목사의 이 진실한 기도를 들으면서 교인들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늘 문을 열어주시고 응답을 부어주신다.
그렇게 진실하게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교회에서 봉헌기도를 할 때마다 빚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
나도 교회에서 봉헌기도를 할 때마다 빚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요즘 빚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다 재정의 고통 중에 있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빚을 해결해주십시오!”
처음에 이 기도를 하는데 쉽지 않았다.
“하나님, 빚을 해결해주십시오!”
처음에 이 기도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무슨 교회에서 목사가 봉헌기도를 하며 빚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가?
그런데 안 할 수가 없어서 기도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간증을 많이 듣는다.
목사인 내가 빚 문제로 기도할 때 ‘맞아, 빚을 해결해야지!’ 하고 기도의 제목을 붙잡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할 때 ‘나도 십일조를 할 수 있겠구나’, ‘
내 빚 문제도 해결될 수 있구나’ 하면서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 것이다.
좀 유치해도 아버지와 대화하듯이 기도하는 것이다.
‘저 성도, 밥도 잘 못 먹는답니다.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주십시오.’
당신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아뢰라.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기 원하신다.
당신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아뢰라.
그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
그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당신 안에 능력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가 나타날 줄 믿는다.
– 래디컬 세대, 조지훈.조지훈 / 규장
– 래디컬 세대, 조지훈.조지훈 / 규장
† 말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마가복음 11장 24절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 에베소서 6장 18절
† 기도
하나님, 당신 앞에 가난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죄인인 나의 모습을 알고, 가슴 치며 회개할 때 용서하여 주시고 받아주옵소서.
진실하게, 간절하게 기도할 때 하늘 문을 열어주옵소서. 저를 만나주옵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영국의 존 포셋(John Fawcett) 목사님은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한 시골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사역에는 크고 작음이 없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성도들을 섬겼는데 설교가 어찌나 훌륭했던지 런던까지 소문이 퍼졌습니다.
런던의 유명 목회자 존 길(John Gill) 목사님은 자기 후임으로 존 포셋 목사님을 청빙했고
망설이는 목사님에게 성도들은 “목사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라며 설득했습니다.
떠나는 날까지 미소로 목사님을 보내주는 성도들의 모습에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느낀 감동을 메모로 남겼습니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 앞 한 기도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안에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하는 중 위로를 나누네.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 교통하면서 또다시 만나리.”
이 아름다운 고백은 훗날 작곡이 더해져 「주 믿는 형제들」(찬송가 221장, 통일 525장)이라는 찬송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불리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교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으로 더 큰 뜻을 위해 서로 섬기고 교통하는 교제를 나누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존중하며 바르게 섬기게 하소서.
주님 안의 형제자매들에게 호칭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고칩시다. <감장환, 나침반 출판사>
떠나는 날까지 미소로 목사님을 보내주는 성도들의 모습에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느낀 감동을 메모로 남겼습니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 앞 한 기도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안에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하는 중 위로를 나누네.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안에 교통하면서 또다시 만나리.”
이 아름다운 고백은 훗날 작곡이 더해져 「주 믿는 형제들」(찬송가 221장, 통일 525장)이라는 찬송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불리고 있습니다.
주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은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교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으로 더 큰 뜻을 위해 서로 섬기고 교통하는 교제를 나누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존중하며 바르게 섬기게 하소서.
주님 안의 형제자매들에게 호칭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고칩시다. <감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