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너는 딱 한 주 나가놓고 사람만 보고 왔구나!

안규수 2022. 10. 24. 05:17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나와 오래 동역한 자매 간사들은 진심으로 나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아내에 대한 배려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설교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말했다.

“설교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에게 부탁합니다.

게시판에 어느 학생이
‘사모하는 간사님’이라고 글을 올렸던데….”

예배당에 모인 학생들이 웃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나에게 글을 쓰는 코너가 있었다. 
설교에 대한 간증도 있고, 건의 사항도 있으며, 언제 또 축구할 거냐는 등의 소소한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여학생이 ‘사모하는 간사님께’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사실 그 학생도 심각한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교육의 기회로 삼았다.사모한다는 표현의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고, 
내가 성장한 시대에서 그 단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설명했다.

글을 올린 학생이 불쾌하지 않도록 이해를 구하면서, 
나에게 글을 쓸 때는 표현을 가려서 사용할 것을 정중하게 부탁했다. 
부탁의 말 끝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사모한다는 말은 오직 한 여자,
내 아내에게만 듣고 싶습니다.
우리 둘만의 사랑의 언어로 남아 있도록 도와주세요.”


학생들의 환호와 박수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날 오해가 될 만한 표현을 삼가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아내를 위한 배려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방패였다.

아내의 불안감은 언제든지 다시 나올 수 있고
동시에 나도 항상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후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은,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전하는 강사님은
나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주셨던 분입니다.

삶으로 용기를 보여준 분입니다.

내가 오래전에 예수전도단 모임에 참석했는데, 
이분이 여학생들에게 자신을 향한 단어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 순간을 저는 잊을 수 없어요.

학생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하는지 놀랐습니다. 
그날. 저를 비롯한 많은 형제들이 오직 자기 아내만을 사랑하며 지키겠다고 결심했지요.

부부 관계에 있어서 나에게 큰 영향을 주신 분을 소개해서 참 기쁩니다.”


나의 분명한 태도와 용기가
남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뻤다
.

책 <하나님 부부로 살아가기> 중에서

★ 말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마태복음 7:7

★ 묵상
# 아내가 사랑하느냐고 물어볼때
# 농담으로라도 다른 말을 하지 않고
# 즉시로 대답해준 것+건강한 선긋기가. 저는 킬링포인트
# 여러분은 어디에서 심쿵하셨나용?
_

# 통계적으로 잘생긴 사람보다
# 누구에게나 다정한 사람이 바람필 확률 ↑
# 타인에겐 적당한 친절함으로
# 당신의 다정함은 배우자에게만!
(가정 있는 사람을 유혹하는 아름다움은, 끔찍한거죠)


# “그 사람이 당신이 언제오는지, 밥은 먹었는지
# 걱정하는 것이 거슬려요.” 남편이 말했다
# 그러다, 남자 사역자의 전화를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고
# 회개하며 통곡했다. 감정적인 간음이었으니까 – 신디제이콥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여인이 있었습니다.
명석한 두뇌로 어려서부터 수재로 자란 딸의 꿈이 꺾이지 않도록 어머니는 모든 힘을 다해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오랜 유학 생활 중에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어 국내로 돌아온 딸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드디어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간 지 2주 만에 오히려 어머니에게도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말라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어떤 성도는 몰래 찾아와 불법적으로 자녀의 대학 입학을 청탁하는가 하면 
수시로 다른 성도들의 이런저런 소문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도저히 그리스도인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나는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만 보였는데 너는 딱 한 주 나가놓고 사람만 보고 왔구나.”
어머니의 깊은 통찰에 딸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했습니다.

다시 교회에 나가 말씀을 보고 주님을 바라보자 더 이상 사람들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가 바라보던 그 예수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멋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사람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인해 잠시 시험에 들 수도 있고 실족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주님을 떠나며 
신앙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지 말고 더욱더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아멘!

주님, 사람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며 자라나는 신앙이 되게 하소서.
지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의 사랑을 통해 바라봅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