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수필

녹색갈증

안규수 2023. 2. 21. 09:59

                                                                        녹색갈증

                                                                                                                        안규수

 

 

 

          여행은 또 다른 나의 꿈이다. 그 꿈을 찾아서 공들인 시간과 노력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숲은 언제나 싱그럽다. ‘하고 발음하면 입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바람 소리, 조잘대며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등 숲의 언어는 곧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제주 협제 해수욕장 비양도 앞 바다의 물빛은 무지개를 닮았다. 살가운 바람에 출렁이는 잔잔한 파도에 쪽물을 풀어놓은 듯 5색의 깊이감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저 푸른 물속에 아무 생각 없이 풍덩 뛰어들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음산하지 않고 그토록 아름답게 보인 적은 처음이다.

  먼 옛날 손주 종명이가 세 살부터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의 고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매년 여름이면 다른 손주들과 함께 찾았던 협제 해수욕장. 그곳에 있는 동안만큼은 거짓말처럼 아토피가 사라져 방글방글 웃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애들이 벌써 믿음직한 청년이 되었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도 바다는 여전히 그 얼굴이다. 희미하게 사라져 가는 기억들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나이 들었다는 얘기다. 시간이 느껴지는 여행지, 거기에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면 더 좋을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즐거움이 배가 되고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는다.

  이른 새벽 명상의 시간을 갖고 책을 읽는다. 몇 시간이 지나면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집 근처 웰빙 숲길을 걷는다. 푸른 하늘, 쏟아져 내리는 햇볕과 바람을 가슴으로 품는다. 어지럽게 널려 있던 생각들이 정리되고, 이런저런 사유의 조각은 융합되어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친다. 숲길을 홀로 걸을 때 그 상상의 조각들은 대부분 길 위에 그냥 두고 온다. 그중 겨우 10% 정도만 가지고 돌아온다. 샘물처럼 흐르는 사유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내용의 초시간적 현재성은 숲길에서만 생성이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나이 들수록 녹색갈증이 커진다고 한다. 녹색갈증은 생물학자 에드워드 월슨 하버드대 교수의 인간 DNA에 자연과 다른 생명체에 이끌리는 본능이 있다는 이론이다. 숲은 자연 항암제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숲에서 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우울감을 개선한다는 연구가 많다. 즉 정상적 안정과 행복감을 증가시킨다는 것. 숲을 이용한 치료 효과는 암이나 만성질환자, 노년층의 스트레스 감소, 면역력 강화,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그저 숲이 좋아서 생각나면 주저 없이 나 홀로 제주를 찾아 곶자왈 숲길을 걸었다. 2년 전 한라산 중산간 제2산록도로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 50대 부부를 만났다. 5년 전쯤 어느 날 부인이 남편의 등에서 노란색을 발견하고 급히 병원을 찾았으나 결과는 췌장암이었다. 수술 후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 곶자왈 숲을 걸었다고 한다. 그들은 새 삶을 살고 있었다.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 웃었다. 지옥에 다녀왔다고.

  나는 제주에 갈 때마다 신()들의 영역인 영실에서 한라산 남벽을 오른다. 영실! 한라산 영실 계곡을 안 본 사람은 제주도를 안 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은 우리나라 아름다운 10대 숲길에 뽑힐 만큼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영실기암은 설문대할망이 사람들에게 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속설이 있다. 이 기를 한껏 들이키며 가파른 돌계단을 쉬엄쉬엄 올라 병풍바위를 지나면 구상나무 자생지다. 구상나무는 상록교목으로 오직 우리나라 한라산 덕유산 무등산에만 자생하는 희귀 수종이다. 많은 구상나무가 흰 뼈를 드러낸 채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고사목이 된 구상나무는 그 죽음조차 아름답다. 그러나 그 고사목은 단순히 기후나 바람에 고사한 게 아니라 멸종의 과정이란다. 지구온난화로 고산식물은 살아남기 위해 고지대로 이동하지만 이미 1,800미터까지 왔으니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 구상나무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었다.

  죽은 구상나무 사이 풀숲에서 반쯤 누인 진달래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모진 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처연히 누워 있는 모습에서 질긴 생명력을 읽는다. 볼수록 꽃은 친근감이 든다. 고지의 산속에서 묵언 정진하는 수도승 같다. 아득한 시간에의 거리감과 함께 씁쓸한 감회의 습기가 마음 한쪽을 적셔온다. 무언으로 전해지는 외로움이 내 삶의 과거를 끌어낸다. 어떤 결핍과 부조화의 결과일 수도 있고, 역량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었다. 순간의 실수가 가져온 파장은 깊고 높았다.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이 견디기 힘들었다. 삶이 그렇듯 나약하고 슬픈 존재임을 뼈저리게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만큼은 진달래꽃처럼 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서 있고 싶다. 봄날 꽃이 저절로 피는 것처럼 보여도 엄동설한의 긴 겨울을 이겨낸 보이지 않는 뿌리, 줄기, 잎이 없었다면 어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윗세오름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걷히고 금빛 햇살이 누리에 퍼지니 홀연히 한라산 주봉의 남쪽 벼랑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언제봐도 황홀함과 신비를 간직한 머리털이 없어서 두무악(頭無岳)이라고 부르는 남벽이 의연하게 버티고 있다. 알프스의 몽블랑에 견줄만한 비경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내 시간도 자정이 지난 지 오래인 듯 어느새 하현달로 향하고 있다.

  선작지왓 평원의 진달래 꽃송이가 들썩인다. 꽃바다의 아름다운 정취에 흠뻑 젖어 들었다. 오름 나그네를 펴낸 제주인 김종철은 말한다.

  “늦봄, 진달래꽃 진분홍 바다의 넘실거림에 묻혀 앉으면 그만 미쳐 버리고 싶어진다.”

  봄은 항상 우리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봄이다. 영원한 생성으로 우리 앞에 오는 봄! 삶도 늘 반복하며 새롭게 온다. 녹색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숲을 찾는다.

        <‘23 수필미학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