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왜 그럴까? 간단하다. 사랑하니까!

안규수 2023. 7. 31. 08:00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그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된다. 
사랑에 빠진 청년은 종일 그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의 일은 까맣게 잊는다. 
알바 시간도 잊고, 기말시험 걱정도 잊은 채 오직 그녀 생각으로 가득하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사랑하니까!

사랑의 본질은 나를 비우고 그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다. 
자아는 ‘나’를 생각하지만, 사랑은 ‘너’를 생각한다. 
자아는 ‘나’를 기쁘게 하려 하지만, 사랑은 ‘너’를 기쁘게 하려 한다.

자아는 ‘나’를 위해 살지만, 사랑은 ‘너’를 위해 산다. 
자아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움직이지만, 사랑은 ‘너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움직인다. 
자아는 나의 감정과 나의 기쁨 그리고 나의 고통과 행복이 중요하지만, 사랑은 너의 감정이 중요하다. 
자아는 ‘나’의 유익에 집착하지만, 사랑은 ‘너’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하면 케노시스의 모든 현상이 저절로 다 나타나게 된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를 보라. 
자신의 모든 뜻과 원함과 필요를 ‘아기’를 위해 비운다. 
그리고 온통 아이 생각으로 가득하다. 
하루종일 아기 생각뿐이다. 
아기의 뜻을 위해서라면 잠도 자지 않는다. 
기본적인 생존의 필요까지 포기한다. 왜 그럴까? 사랑하니까!

케노시스는 비움 자체가 목적인 비인격적인 자기부인과는 다르다.
케노시스의 목적은 비움이 아니다. 
케노시스의 목적은 오히려 채움이다. 
디모데는 바울의 뜻과 원함으로 자신을 가득 채웠다. 왜냐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원함으로 나를 가득 채운다. 
왜냐고?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이 디모데의 케노시스였다.

디모데는 늙은 바울을 아버지처럼 섬겼다. 
바울을 섬긴다고 떨어질 떡고물은 전혀 없었다. 
바울은 늙고 병들었고 옥에 갇혔다. 
그 정도 따라다니고 섬겼으면, 이제 나도 내 생각대로 할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내가 언제까지 바울의 종노릇만 하랴! 내 나이도 이제 먹을 만큼 먹었는데. 
나도 내 사역할 때가 되었지! 이제 독립이다!’

하지만 디모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늙고 노쇠한 바울,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 
옥에 갇혀 후배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죄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는 바울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빌 2:7]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디모데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크고 화려하게 성공한 사역자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충성되고, 우직하고, 요령 없고, 자기 것 챙길 줄 모르는 바울의 종, 
바보 디모데. 
이 바보 같은 사람에게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신 분은 바로 이런 바보 같은 사람, 예수셨다.

적어도 천국에서는 이런 사람이 큰 자다. 잊지 말자. 
케노시스의 핵심은 사랑이다.
케노시스의 핵심은 충성이다.


디모데는 정말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드려 헌신했다. 
바보같이 바울을 섬겼다. 요령 없이 바울을 섬겼다. 
자기 것 챙기지 않고 바울을 섬겼다. 
이처럼 바보 같은 디모데!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현대 교회 안에서 보고 싶어 하시지 않을까?

하나님의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다. 
그래서 약삭빠른 현대인에게는 바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바보 같음이 교회를 아름답게 하고, 세상과 다르게 하는 생명이다.

디모데의 이 바보 같음이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를 특별하고 아름답게 했듯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 특별한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감격적인 일이 아닐까? 그것이 진짜 복음의 능력이다.


교회는 서로를 향해 바보같이 케노시스 하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나타내는 놀라운 영광이다. 
이 영광과 축복이 여러분의 삶 속에도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 케노시스 : 자기비움, 고성준

†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장 34, 35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요한일서 4장 7, 8절

† 기도

나의 생각과 마음으로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시옵소서. 
디모데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행 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교회에 처음 나온 초신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는 ‘언어의 적응’이라고 합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한 성도들은 익숙해져서 모르지만 교회에 처음 나오거나 
출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들이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복음주의 출판협회가 수여하는 「골든 메달리온」을 
두 차례나 수상한 영향력 있는 작가 밥 호스테틀러(Bob Hostetler) 목사님은 
새신자들을 대상으로 설교할 때 다음의 5가지 사항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 첫 30초에 흥미를 끌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
2. 내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3. 상대방이 자신을 무식하다고 느끼게 만들지 말아라.
4. 새신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의 답을 주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라.
5. 들은 말씀을 어떻게 생활에 적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가르쳐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설교의 팁이지만 복음의 전달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원리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아는 복음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선물하는 것입니다.
오랜 신앙생활에 빠져 우리만의 언어로 상대방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아이와 대화할 때와 어른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듯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배려하는 언어와 자세로 복음을 전하십시오. 아멘!!!

주님, 상대방이 자신을 무식하다고 느끼게 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게 하소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도 배려하는 언어와 자세로 복음을 전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