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오늘은 신문, 내일은 신문지처럼

안규수 2014. 12. 5. 13:03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누리셨는 지요?

하노이는 쌀쌀한 날씨인지라...

오늘 아침 이블 밖으로 나오기가 싫어 한참을 뒹글다가...

겨우 빠져 나와 보고서를 쓰고 아침 메일을 올리고 있습니다.

호치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취인지라...너무 좋네요 ^0^ 


한국은 이번 겨울들어 가장 강한 한파가...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구요. 

강한 한파에 늘 건강 유의하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은 정성화 님의 <오늘은 신문, 내일은 신문지처럼> 라는 수필 한 편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활짝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신문은 하루가 지나면 신문지가 된다" 라는 글귀가 어제부터 계속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네요...


<이 수필 원문을 보시고 싶은 분은 다음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http://blog.daum.net/dhotjd23/426 > 


창가로 비쳐 드는 아침 햇살과 신문, 그리고 향(香)이 그윽한 원두커피 한 잔, 이것이 우리 집 '아침 3종 세트'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제 막 나온 것'이다. 

오늘의 기사가 궁금한지 내가 펼치는 면마다 햇살이 저 먼저 고개를 드민다. 

키가 작은 커피 잔도 계속 하얀 김을 전령으로 내보내며 소식을 기다리는 눈치다. 

신문에 쏠리는 눈들이 아침을 더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신문 기사는 대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의 온도는 오르락내리락한다. 

의안을 한 건도 가결하지 않은 채 회기를 넘긴 국회의원들의 세비를 생각하면 열이 나고, 

내수 경기가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는 기사에는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러다가 사회면에 들어가 누가 온정을 베푼 사연을 읽고 나면 다시 마음이 뜨듯해진다. 

허투루 쓴 기사가 없다. 

가끔 두 면에 걸친 전면 광고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 또한 신문사의 허리를 받쳐주는 힘이라 생각하며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신문은 그날이 지나가면 '신문지'가 된다. 

이게 또 매력덩어리다. 

신문이 갓 시집온 새댁 같다면 신문지는 살림꾼이 다 된 아낙과도 같다. 

못 하는 게 없고 가리는 일이 없으며 궂은일일수록 두 팔을 걷어붙인다. 

콩나물이나 멸치를 다듬으려고 할 때, 어쩌다가 주방 바닥에 식용유를 쏟았을 때, 

중국 음식이 배달됐을 때, 소포 상자에 어정쩡하게 남은 빈 공간을 채울 때 등 그때마다 신문지가 나선다. 

가구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싶을 때에도 야무지게 접힌 신문지가 들어가서 평형을 맞춘다. 

신문지가 우리 집 해결사다. 구겨지고, 접히고, 잘리고, 뭉쳐지면서 제게 맡겨진 일을 잘도 해낸다.


사람의 일생도 그런 것 같다. 

젊어 한때 주목받는 '신문'이 되지만 곧 '신문지'의 삶을 살게 되는 게 아닐까. 

내가 '신문'으로 살았던 때를 꼽는다면 아마 첫 부임지에서 근무하던 시절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학교로 달려갔다. 

초임 교사로서 꿈도 많았고 할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게 즐거웠다.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조간신문'이었다. 

항상 일찍 출근하는 것을 빗댄 별명이었다. 

동료들에게 다소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나는 그 별명이 마음에 들었다. 

'신문' 하면 성실함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별명 때문인지 모르지만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 

매일 새로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지, 모든 아이에게 공정한지를.


(중략) 


잘 살다 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죽고 난 뒤에 그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잘 산 삶이 아닐까. 

그리고 신문지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이 세상에 다 내어주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삶이 아닐지. 

오늘은 신문처럼, 내일은 신문지처럼 살다 가는 것은 어떨까. 

매일 아침 문 앞에 놓인 '세상'을 집어 들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만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고 아플 때

그 사람만 생각하면 기도가 안나올 때

또 그리스도인으로써 스스로 죄책감이 느껴질 때...


분노는 빨리 버려야합니다 분노는 독극물과 같아서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현대인을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안좋은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 입니다.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말고

하나님께 기도한 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용서하여 건강해지고 자유로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지킬 앤 하이드’, ‘보물섬’과 같은 고전을 남긴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은 

작품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딜가나 가족과 함께 했고,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은 함께 저녁 예배를 드리던 도중 울음을 터트리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놀란 부인이 재빨리 뒤 따라 나가 물었습니다.

“여보,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

“아까 마을에서 어떤 행인과 사소한 시비로 말다툼을 벌이고 헤어졌소. 

그런데 이제 와서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니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소.”

마틴 루터는 양심의 가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회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기도를 하며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기도로 죄를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배는 기쁨과 찬양의 마음으로 드려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거리낌이 있을 때에는 눈물과 회개의 마음 또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고백하는 예배자가 되십시오. 


주님! 진실한 마음의 고백으로 주님께 기도하게 하소서!

누군가와 거리끼는 마음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