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다니엘 임팩트

안규수 2015. 1. 8. 10:4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오늘은 한홍 목사님의 <다니엘 임팩트>이란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돈과 명예와 권세가 영원히 갈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그것은 생각보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마치 내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굴어선 안 된다. 

최근 우리 교회에서는 열일곱 살인 은빈이를 천국으로 보낸 아픔이 있었다. 
건강하던 아이가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폐가 감염되어 중환자실에서 100일 동안 고통받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아이의 부모님은 정말 놀랄 만한 믿음으로 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특히 나와 성도들은 병마와 싸우는 은빈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기도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은빈이의 부모님은 SNS 대화방을 통해서 매일 기도제목들을 올렸는데, 거기에는 순간순간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아이와 부모님에겐 기도하는 하루하루가 그저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시간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선물이다. 
그러니 결코 단 하루의 시간도 당연시해선 안 된다. 
살아서 일할 수 있는 매일이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감사해야 한다. 

인생에서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무게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날들을 재어보신다. 
그 시간은 지나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남김없이 차곡차곡 쌓인다.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에 얼마나 하나님과 깊이 교제했고, 그분의 뜻에 순종했고,
하나님나라의 확장에 기여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렸는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재어보시는 영적 무게이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 4:14) 
하나님의 심판은 서서히 오는 게 아니라 갑자기 벼락같이 임한다. 
홍수 때 봇물 터지듯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급하게 몰려든다. 
바벨론이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심판 모습을 마치 바벨론제국의 패망 때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계 18:1,2)   

겉보기에 바벨론은 크고 화려한 성이지만 그곳은 귀신의 처소이며,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었다. 
오늘날의 세상이 그렇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대도시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영적으로 더러운지 모른다. 
“각종 더러운 영”, 즉 음란과 폭력과 욕심과 미움과 허영의 영들로 가득 차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   

바벨론제국에 하나님의 심판이 순식간에 임하면서 망하게 된다. 
이는 노아의 홍수 때도 그러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마지막, 최후의 심판 때도 그럴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이 함께 맷돌질을 할 때,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둔다고 하셨다(마 24:41). 
어느 날,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지 모른다.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빛의 자녀로 깨어서 살아야 할 것이다. 


돌아보면, 내 의지대로 살아왔던 2014년이었습니다. 

나의삶, 나의 모든 것을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셔야하는데..
내 의지대로, 내 욕심대로, 내 마음에 맞는 신앙의 모습으로만 살아왔습니다.
나는 경건한체, 혀의 힘으로 주의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도 죄성으로 가득한 인간이기에
못난 죄인을 인도하사 아주 짧은 시간일지언정 
내 안에 주의 음성으로 가득채우고 주의향기로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19세기 성경을 범신론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유주의신학이 유럽을 휩쓸면서 많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때에 새로운 정통주의 신학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던 신학자 두 명이 있었는데 스위스의 칼 바르트와 독일의 본회퍼였습니다. 

이들은 성경의 온전성과 유일성을 역설하며 정통신학을 변증했으며, 

아울러 히틀러에 지배를 받는 시대적 상황에서 성도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취하던 노선은 조금 달랐습니다. 

본 회퍼는 ˝미치광이 운전자가 더 많은 사고를 내기 전에 운전석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말로 히틀러에 맞서며 

암살하는 계획을 세우고 가담했지만 칼 바르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저 역시 히틀러가 싫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히틀러를 만날 기회를 준다면 총을 쏜다기 보다는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저에게는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잘못된 탄압에 맞설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러나 탄압의 대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더 큰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복음임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 사랑과 복음 전파가 제일의 목적이 되게 하소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