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아가기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어제 함께 묵상했던 만화 한 컷의 내용이 어제 종일 제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0^
함께 조용히 이 기도로 하루를 열어 보시면 좋을 듯 싶네요 ~
주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찾지 아니하고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기도하는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는 목자만 잘 따르면
당연히 양으로서 누릴 수 있는 은혜임을 늘 기억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물을 주님보다 귀하게 여김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우리들의 우상이 되지 않게 하소서!
오늘은 조현삼 목사님의 <존경의 대물림>이라는 칼럼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성경의 땅에서 지리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요단강을 기준으로 동서로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나눠집니다.
요단강 동편은 요르단, 서편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나눠집니다.
오늘의 요르단에는 아모리, 암몬, 모압, 에돔 족속이 옛날에 살았습니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꽤 많이 흘렀습니다.
지금 그곳에는 아모리국도 암몬국도 모압국도 에돔국도 없습니다.
요르단에서 그곳에 살고 있는 분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요르단에 사는 사람들 중에 자신들의 조상을 아모리나 암몬이나 모압이나 에돔 족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주저없이 단호하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베들레헴에서 팔레스타인 교회 목사님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에 자신의 조상이 블레셋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요?”라고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팔레스타인은 성경에 나오는 블레셋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블레셋이 필리스티안(Philistine)으로 되어 있고,
아랍어 성경에는 블레셋이 팔레스타인(Palestine)으로 되어 있습니다.
로마 황제 히드리안이 135년 2차 반란(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독립전쟁)을 진압하고 유대인들을 전부 그 땅에서 쫓아내면서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이름, 블레셋을 그 땅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이천여 년의 역사 가운데 그 땅의 이름이 엎치락뒤치락 합니다. 그
러다 영국이 위임통치를 하면서 그 땅의 이름이 다시팔레스타인이 되었습니다.
영국이 위임통치를 하고 있을 때는 아랍계 팔레스타인, 유대계 팔레스타인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이 독립하면서 그 이름을 버리고 이스라엘을 국호로 정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땅에 있던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땅 이름이던 팔레스타인이 민족의 이름처럼 의미가 바뀌고 있습니다.
성경지리 연수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땅을 살았던 아모리, 암몬, 모압, 에돔 족속은 블레셋의 후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을 찾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혼혈이 되어 자신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들의 조상들이 존경을 받지 못해서, 그들이 자신들의 조상을 존경하지 않아서 생긴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부모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부모가 될 이들도 있을 것이고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존경 받는 부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금식하지 않고도 그냥 존경할 수 있는 부모가 있는 것은 복입니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고 어떤 사람이 한 말입니다.
“기다릴 부모가 있어 좋겠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부모, 그 부모의 자리가 우리 자리여야 합니다.
어느 날, 우리는 떠납니다.
우리가 떠날 때 남겨진 이들에게 존경을 선물 같은 유산으로 주고 가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를 존경할 수 있도록 하고 떠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가정에서 존경의 대물림이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마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아무런 꿈이 없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조금의 의욕과 열정도 없던 청년은 그저 남들과 비슷하게 흉내나 내며 삶을 살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대학을 가는 것을 보고 입시를 준비했지만 실력이 되지 않아 2년제 대학을 나왔습니다.
전공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취직도 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가진 기술인 면허를 활용해 트럭을 운전하고 스쿨버스 기사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이 청년의 삶 속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영화를 공부하고 단편을 찍으며 모든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집에서도 쫓겨나 싸구려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고,
돈이 한 푼도 없어 다른 손님이 남기고 간 음식을 주워 먹어 끼니를 때우기도 했으나
영화를 향한 열정만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0대 후반에 뒤늦게 꿈을 발견한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청년은
훗날 ‘아바타’,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등을 만들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최고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같은 환경과 같은 생각,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은 커다란 차이가 납니다.
또한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을 위한 꿈과 하나님을 위한 꿈을 가진 사람은 더욱 큰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을 사십시오.
주님!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저를 사용하여 주소서!
꿈이 있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하루를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