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을 내어도 죄 짖지말라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호치민은 지난 주일 비가 시작된 이후 어제 오후에도 강한 비를 뿌려 본격적인 우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네요.
아마도 산천의 초목이 가장 좋아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오늘은 이찬수 목사님의 <죽으면 죽으리라>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에 3:5)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보며 하만은 매우 분노했다.
‘내가 제일 잘났어’ 하는 교만이 하늘을 찔렀기에 누구라도 자기에게 절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냥 화만 내고 끝낸 게 아니었다.
이렇게 시작된 분노가 어디로 이어지는가?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에 3:6)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자기에게 절하지 않은 모르드개만 죽이는 게 부당하다고 느낀 하만은
온 나라의 유다인을 다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끝내지 않았다.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니 열두째 달 곧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에 3:13)
유다인을 전부 죽이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끝내 멈추지 않고 왕의 조서를 받아 실행에 옮기게 했고,
또 그들의 모든 재산을 탈취하라고 명령했다.
여기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하만의 분노는 모르드개가 자신을 무시하며 절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 것에서 시작했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하만의 분노가 어떻게 되는가?
점점 끝 간 데 없이 커지더니 파괴적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감정의 통제가 전혀 안 되고 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감정의 통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누구나 살다보면 기분이 나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다.
하나님도 그것을 허용하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분노의 감정이 일어날 때 그 내면에 하나님이 계신 인생이라면 그 감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화’와 관련하여 이런 지침을 주셨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 4:26,27)
하나님께서는 분 내는 것까지는 허락하시지만 해 질 때까지 그 분을 담아두지는 말라고 하신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 감정을 통제하고 다스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감정이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여러 교회를 다녀보면 정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교회 안의 장로님들, 권사님들, 믿음이 좋다는 성도들 중에 이것이 안 되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신실한 장로님이지만, 그분의 행동에서 전혀 감정 통제가 안 되는 모습이 보인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언젠가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 기뻤던 적이 있다.
그 집사님이 자기 남편을 이렇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저희 남편이 교회에 다니면서 정말 믿음이 좋아졌어요. 원래 굉장한 다혈질이어서 전혀 감정 통제가 안 되었는데,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믿음이 좋아진 후로 그런 모습이 사라졌어요.”
바로 이런 분이 교회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얼마나 열심을 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감정을 통제해주시기 때문에 설령 화가 날 때라도 그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사람이니 당연히 화가 날 수 있다. 나도 다혈질이기 때문에 잘 안다.
또 화가 나야 정상이다.
화가 날 때 무조건 화를 억제하는 게 좋은 건 아니다.
화를 잘 내는 게 중요하다.
화가 날 때 나의 감정을 하나님께서 통제해주시도록 하나님께 주도권을 내어맡기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진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산다면 자신의 감정을 주님이 다스리시도록 내어맡기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어떤 비장한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 제가 오늘도 혈기를 부리지 않게 해주세요.
제 안의 감정을 주께서 통제하시고 다스려주세요!”
하나님께 감정의 통제권을 맡기는 것, 그것이 그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다는 증거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져지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멈춤이나 전진이나 퇴보도
그에 따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는 한 반드시
주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삼하 22: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세계적 성경학자인 F. B. 마이어가 배를 타고 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일랜드의 홀리헤드 항구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날이었는데, 운항이 늦어져 매우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마이어는 이렇게 깜깜한 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갑판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조종하고 있는 선장의 모습은 매우 여유가 넘쳤습니다.
“선장님, 조금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바로 앞에 항구가 있다고 해도 전혀 구분을 못할 것 같은 어두운 날씨인데요?”
“그건 걱정 마십시오. 홀리헤드 항구에서는 언제나 세 개의 불빛을 켜놓습니다.
그 불빛이 정확히 일자가 되도록 보인다면 우리는 아무런 위협 없이 항구에 정박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불빛이 일자로 보이도록 배를 조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이어는 선장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것 같다면, 내가 움직이진 않았는지 확인해 보라!’
불빛이 정확히 일렬로 보이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삶을 온전히 말씀에 맞추면 온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맞추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며 지혜로운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주님! 인생의 모든 기준이 말씀으로 설정되게 하소서!
하나님을 나에게 맞추지 말고 나를 하나님께 맞추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