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수필
매화 핀 보성강 길을 걷다
안규수
2015. 5. 1.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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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 시인, 순천대 교수
보성강 길을 걸었다. 전남 곡성군의 목사동에서 압록으로 흐르는 이 자그만 강줄기는 첫눈에 사람들의 마음을 붙드는 시정(詩情)을 지녔다. 연둣빛 강물을 따라 자리한 강마을들. 매화와 진달래 복숭아꽃이 한데 어울려 필 무렵이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강변에는 초가집 집채만 한 찔레꽃들이 수북수북 피고 강물은 찔레꽃 향기의 터널이 된다. 운이 좋은 날은 조각배를 저어가며 대숲에서 죽순을 캐는 허리 굽은 노인을 볼 수도 있다. 전업 작가 시절에 이곳 제월리 마을에서 삼 년쯤 글을 쓰며 지낸 적이 있으니, 강변의 꽃나무들과 봄물 냄새는 내게 살붙이 형제를 만나는 느낌을 준다.
죽곡마을에서 한 노인이 밭 구덩이에서 무를 캐내는 것을 본다. 돌담 안의 밭은 볕이 따스하다. 무가 참 튼실하고 좋소. 인사 삼아 말을 건네니 노인이 소밥이오 라고 말한다. 얘기를 들으니 사료 값이 너무 비싸 사료를 먹이지 못하고 볏짚에 무를 썰어 넣어 먹인다는 것이다. 노인은 무 세 뿌리를 꺼내었는데 내게 한 뿌리를 건네준다. 맛이 참 좋소. 작년 김장철에 무가 똥값이 되어 소 먹을 것을 남기고 그냥 밭에서 썩혔소, 한다. 외양간에서 노인이 소밥 주는 모습을 보았는데 한눈에 소가 비쩍 말랐음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무를 낫으로 척척 베어내 볏짚에 떨구어 주었고, 소는 눈을 껌벅이며 밥을 먹었다. 소가 사료를 더 좋아하나요? 하고 물으니 그럼 좋아서 환장하지 라는 말이 돌아온다.
환장(換腸)은 장이 뒤집힌다는 말이다. 살아가는 동안 좋아서 장이 뒤집힐 만한 기억이 내게 있었을까. 쉬 떠오르지 않는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좋았지만 환장할 정도는 아니었다. 좋았다기보다 먹먹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전화는 내가 절망의 맨 밑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왔다. 한 템포 더 빨리 왔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좋지 않은 일로 장이 꼬이는 경우도 환장이다. 우리는 매일 장을 뒤집으며 산다. 고3인 한국 젊은이가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는 뉴스 앞에서 가슴이 아프다. 앞길 창창한 이 학생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이 학생의 사고방식에 우리 사회의 잘못은 없었을까. 23년째 수요 집회를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성노예는 없다고 강변하는 일본 우익 정권. 강제로 끌려간 군대위안부 할머니들에게 70년 만에 지급된 199엔(약 1830원)의 후생연금은 후안무치의 극을 보여준다.
세월호 유족들이 가라앉은 배의 모형을 리어카에 싣고 삼보일배를 하며 팽목항을 떠나 서울로 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은 시리고 아프다. 백주에 미국 대사를 칼로 찌른 한 사이코패스의 행태는 그가 우리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점에서 많이 부끄럽다. 이를 두고 북의 정권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비유하니 제정신이 아니다. 종북과 종북 숙주 운운하며 공안 정국의 냄새를 풍기는 남쪽 또한 이성적인 행위가 아니다. 한국과 한국민에 대해 애정을 지닌 외국인을 그가 미국 대사라는 이유만으로 찌를 수 있는 사람은 사이코패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닐 것이다.
노인이 준 무 하나를 들고 강을 따라 걸어간다. 꽃샘추위를 뚫고 핀 매화꽃 향기가 자욱하다. 매화 꽃길은 지리산의 산골 마을들을 지나 멀리 섬진강 하류의 하동까지 이어진다. 언덕과 마을, 강물에 핀 매화꽃의 분홍은 잠시 세상살이의 핍진(乏盡)함을 잊게 한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우봉 조희룡은 그의 저서 ‘호산외사’에 우리 선인들이 얼마나 매화를 사랑했는지에 대한 일화를 남겨 놓았다. 어느 날 단원 김홍도의 집에 한 상인이 매화분을 팔러 왔다. 넋을 빼앗길 만큼 고아한 격을 지닌 매화였으나 끼니를 끓일 돈도 없는 단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마침 그림을 사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3000냥에 그림을 판 단원은 2000냥을 주고 집에 온 상인에게서 매화분을 사고 800냥으로는 좋은 술 여러 말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들여 매화음을 즐기고 놀았으며, 남은 200냥으로 쌀과 땔나무를 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옛 화사들이 그림 파는 일을 수치로 여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거니와 그림으로 아름다운 매화분을 얻었으니 기쁜 일이요, 남은 돈으로 동무들과 함께 며칠 밤낮 푸짐한 술자리를 즐겼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매화가 피는 철은 사랑스러운 철이다. 훈훈한 바람이 불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개울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하고, 땅속의 벌레들이 기지개와 함께 자신들의 몸을 땅 밖에 내밀기 시작한다. 삼라만상이, 존재의 의미조차 잘 알지 못하는 온갖 미물들이 자신들의 삶과 사랑이 다시 한 번 펼쳐질 이승의 세계에 따스한 숨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고난의 순간들이 내재해 있다. 생명의 의미란 다름 아닌 고통과의 지난(至難)한 싸움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고 생각되는 순간, 훌훌 털고 꽃 핀 봄 들판을 걸어 보자.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도 좋을 것이고, 삶이 힘든 몇몇 동무들과 함께 걸어도 좋을 것이다.
봄 꽃길을 걷다 보면 내 생에 진짜 좋아서 환장할 일이 하나 남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남에서 핀 꽃들이 북상하여 온 반도를 뒤덮듯 언젠가 남녘 북녘의 웃는 사람들 얼굴로 우리 반도가 출렁일 시간이 올 것이다. 매화꽃 향기를 따라 걷다 보면 모두 손잡고 춤추는 그날 생각이 난다.
보성강 길을 걸었다. 전남 곡성군의 목사동에서 압록으로 흐르는 이 자그만 강줄기는 첫눈에 사람들의 마음을 붙드는 시정(詩情)을 지녔다. 연둣빛 강물을 따라 자리한 강마을들. 매화와 진달래 복숭아꽃이 한데 어울려 필 무렵이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강변에는 초가집 집채만 한 찔레꽃들이 수북수북 피고 강물은 찔레꽃 향기의 터널이 된다. 운이 좋은 날은 조각배를 저어가며 대숲에서 죽순을 캐는 허리 굽은 노인을 볼 수도 있다. 전업 작가 시절에 이곳 제월리 마을에서 삼 년쯤 글을 쓰며 지낸 적이 있으니, 강변의 꽃나무들과 봄물 냄새는 내게 살붙이 형제를 만나는 느낌을 준다.
죽곡마을에서 한 노인이 밭 구덩이에서 무를 캐내는 것을 본다. 돌담 안의 밭은 볕이 따스하다. 무가 참 튼실하고 좋소. 인사 삼아 말을 건네니 노인이 소밥이오 라고 말한다. 얘기를 들으니 사료 값이 너무 비싸 사료를 먹이지 못하고 볏짚에 무를 썰어 넣어 먹인다는 것이다. 노인은 무 세 뿌리를 꺼내었는데 내게 한 뿌리를 건네준다. 맛이 참 좋소. 작년 김장철에 무가 똥값이 되어 소 먹을 것을 남기고 그냥 밭에서 썩혔소, 한다. 외양간에서 노인이 소밥 주는 모습을 보았는데 한눈에 소가 비쩍 말랐음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무를 낫으로 척척 베어내 볏짚에 떨구어 주었고, 소는 눈을 껌벅이며 밥을 먹었다. 소가 사료를 더 좋아하나요? 하고 물으니 그럼 좋아서 환장하지 라는 말이 돌아온다.
환장(換腸)은 장이 뒤집힌다는 말이다. 살아가는 동안 좋아서 장이 뒤집힐 만한 기억이 내게 있었을까. 쉬 떠오르지 않는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좋았지만 환장할 정도는 아니었다. 좋았다기보다 먹먹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전화는 내가 절망의 맨 밑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왔다. 한 템포 더 빨리 왔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좋지 않은 일로 장이 꼬이는 경우도 환장이다. 우리는 매일 장을 뒤집으며 산다. 고3인 한국 젊은이가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여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는 뉴스 앞에서 가슴이 아프다. 앞길 창창한 이 학생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이 학생의 사고방식에 우리 사회의 잘못은 없었을까. 23년째 수요 집회를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성노예는 없다고 강변하는 일본 우익 정권. 강제로 끌려간 군대위안부 할머니들에게 70년 만에 지급된 199엔(약 1830원)의 후생연금은 후안무치의 극을 보여준다.
세월호 유족들이 가라앉은 배의 모형을 리어카에 싣고 삼보일배를 하며 팽목항을 떠나 서울로 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마음은 시리고 아프다. 백주에 미국 대사를 칼로 찌른 한 사이코패스의 행태는 그가 우리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점에서 많이 부끄럽다. 이를 두고 북의 정권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비유하니 제정신이 아니다. 종북과 종북 숙주 운운하며 공안 정국의 냄새를 풍기는 남쪽 또한 이성적인 행위가 아니다. 한국과 한국민에 대해 애정을 지닌 외국인을 그가 미국 대사라는 이유만으로 찌를 수 있는 사람은 사이코패스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닐 것이다.
노인이 준 무 하나를 들고 강을 따라 걸어간다. 꽃샘추위를 뚫고 핀 매화꽃 향기가 자욱하다. 매화 꽃길은 지리산의 산골 마을들을 지나 멀리 섬진강 하류의 하동까지 이어진다. 언덕과 마을, 강물에 핀 매화꽃의 분홍은 잠시 세상살이의 핍진(乏盡)함을 잊게 한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우봉 조희룡은 그의 저서 ‘호산외사’에 우리 선인들이 얼마나 매화를 사랑했는지에 대한 일화를 남겨 놓았다. 어느 날 단원 김홍도의 집에 한 상인이 매화분을 팔러 왔다. 넋을 빼앗길 만큼 고아한 격을 지닌 매화였으나 끼니를 끓일 돈도 없는 단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마침 그림을 사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3000냥에 그림을 판 단원은 2000냥을 주고 집에 온 상인에게서 매화분을 사고 800냥으로는 좋은 술 여러 말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들여 매화음을 즐기고 놀았으며, 남은 200냥으로 쌀과 땔나무를 들여 놓았다는 것이다.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옛 화사들이 그림 파는 일을 수치로 여겼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거니와 그림으로 아름다운 매화분을 얻었으니 기쁜 일이요, 남은 돈으로 동무들과 함께 며칠 밤낮 푸짐한 술자리를 즐겼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매화가 피는 철은 사랑스러운 철이다. 훈훈한 바람이 불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개울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하고, 땅속의 벌레들이 기지개와 함께 자신들의 몸을 땅 밖에 내밀기 시작한다. 삼라만상이, 존재의 의미조차 잘 알지 못하는 온갖 미물들이 자신들의 삶과 사랑이 다시 한 번 펼쳐질 이승의 세계에 따스한 숨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고난의 순간들이 내재해 있다. 생명의 의미란 다름 아닌 고통과의 지난(至難)한 싸움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고 생각되는 순간, 훌훌 털고 꽃 핀 봄 들판을 걸어 보자. 가족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도 좋을 것이고, 삶이 힘든 몇몇 동무들과 함께 걸어도 좋을 것이다.
봄 꽃길을 걷다 보면 내 생에 진짜 좋아서 환장할 일이 하나 남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남에서 핀 꽃들이 북상하여 온 반도를 뒤덮듯 언젠가 남녘 북녘의 웃는 사람들 얼굴로 우리 반도가 출렁일 시간이 올 것이다. 매화꽃 향기를 따라 걷다 보면 모두 손잡고 춤추는 그날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