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인자요산 지자요수 / 이계삼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지나가던 날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마을에는 거대한 산사태가 나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박민자 할머니는 9시간 뒤에 구조되어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남편은 흙을 너무 많이 먹어 위를 비롯한 장기에 구멍이 났고,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은 현장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은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며 “우리 몸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 암덩어리”로 “확확 들어내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손톱 밑 가시는 몇백개를 뽑기로 했는데, 아직도 뽑지 못한 게 많이 있죠? 그건 언제 하죠?”라고 표독하게 덧붙이시기도 했다. 그리하여 대통령 앞에서 ‘규제완화’를 읍소했던 풍력발전 사업자는 바로 그곳 산사태 현장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 인허가를 일사천리로 받아냈다. 4㎞에 이르는 산 정상은 벌목으로 민둥산이 되었고, 그 끔찍한 산사태를 겪었던 주민들은 ‘암덩어리, 쳐부수어야 할 원수, 손톱 밑 가시’와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지금도 기약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강을 결딴냈다.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본류는 지금 녹조 범벅이고, 물고기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곁으로 큰빗이끼벌레가 유유히 헤엄치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되어 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산을 결딴내고 있다. 빗장이 풀린 산지개발허가는 전국 곳곳에 대규모 개발사업을 일으키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지난 28일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멸종위기종 산양을 앞세운 이들의 눈물겨운 호소는 간단히 제압당했다. 설악산을 무너뜨린 저들은 이제 전국 곳곳의 명산에 케이블카를 박고 관광호텔들을 지어댈 것이다. 나무를 베고 댐을 막아 계곡들을 수장시킬 것이다. 언젠가 전임 대통령께서 지리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기는 아직 개발이 덜 되었다’며 내려주신 무언의 ‘교지’를 지금 대통령이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그의 임기 내내 산을 결딴내는 개발 광풍이 몰아칠 것 같은데, 이번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새정치연합 소속 도지사도, 대권을 꿈꾸는 문재인 대표도 적극 지지했다고 한다.
공자님은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라 하였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니, 어짐이란 고요하고(靜) 지혜란 움직이는(動) 것이어서, 거기에 즐거움(樂)과 생존(壽)이 있다 하였다. 노년의 공자는 강가에 서서 ‘흐르는 것이 이와 같구나, 낮밤으로 쉬지도 않는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흐르는 물은 우리도 저와 같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다른 세상으로 흘러갈 것임을 깨닫게 했다. 산은 거기 깃든 것들을 품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엄하고 우뚝한 아버지를 표상했고, 인생사의 화탕지옥에 지친 이들은 산으로 숨어들었다. 강과 산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사랑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본보기 삼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볼 어떤 것도 없이 ‘그저’ 산다. 물놀이는 워터파크에서 하는 것이고, 녹조로 썩어가는 강은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 산사태가 나서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이 죽으면 보험사에서 보상금을 줄 것이며, 자연에서 얻었던 인생의 교훈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전해지는 목사님의 설교로 배우면 될 것이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크리족 인디언 추장의 예언은 이 나라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될 것 같다. 우리는 행한 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이계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