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Yes)‘노’(No)‘기다려’(Wait)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은 밀린 보고서 등으로 이른 새벽에 일어나 보고서를 정리하고 아침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0^
요즈음 운영중인 프로젝트중에 한국인 데스크를 담당할 직원 채용을 준비하면서
몇몇 믿을만한 지인들에게 부탁을 해 놓았지만 아직 한 건의 소개도 받지 못하고 있는 데요,
채용 시한이 다가 오면서 초조한 마음이 들 때마다,
예비해 놓으신 분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조금 더 인내하며 기다리는 훈련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은 최근 '오직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과 함께하는 모험'을 자주 얘기하고 계시는 데요,
아마도 여러가지 변화로 인해 두려워하는 제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함께 하는 모험...
설레이는 아침입니다. ^0^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김승욱님의 <나는 믿습니다>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0^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 때 우리의 기도는 달라집니다.
확신과 신뢰로 간구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며 강조하신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손으로 깎아 만든 나무 인형이나 돌 앞에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계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론 우리는 내 뜻대로 해주셔야만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라고 자주 착각합니다.
그러나 만일 어린 자녀가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아빠, 저 담배를 피워보고 싶어요. 담배 좀 주세요” 한다고 해서
선뜻 아이의 손에 담배를 쥐여줄 부모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 있고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이 있습니다.
‘예스’(Yes)도 응답이지만 ‘노’(No)도, 때로는 ‘기다려’(Wait)도 응답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청년 수련회에서 한 탈북 청년의 간증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탈북하기 전, 그의 새어머니가 그를 불러서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네가 정말 어렵고 필사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렴.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믿지 않는 자였기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고 합니다.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 간 그는 다른 탈북자들과 한 건물의 방 안에 숨어 있었는데,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다들 어쩔 줄 모르고 ‘이젠 죽었구나’ 하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새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눈을 감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난생 처음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날 때쯤 공안의 말을 통역하는 조선족 한 명이 와서 그를 흔들더랍니다.
‘이젠 죽었구나’ 하며 눈을 떴는데, 그 조선족은 전혀 예상 밖의 말을 꺼냈습니다.
“당신 한국 사람입니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산다고 들었던 것이 생각 나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공안은 두 번째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 어디에서 왔습니까?”“서울에서 왔습니다.” 그 청년은 서울 말고 아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제 주소를 대라고 하면 모든 게 끝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묻지 않고 또 예상 밖의 질문을 던지더랍니다.
“이 사람들도 다 한국에서 왔습니까?” 머리로는 아니라고 대답해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들통 나면 다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입술에선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데 공안은 또 예상 밖의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니 다들 이곳에서 나가주세요.”
그래서 모두 나와서 살았다고 합니다.
청년은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저는 그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연약한 믿음으로, 너무나 연약한 목소리로 하나님 아버지를 불렀던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저를 살려주신 하나님을 제가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제 인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뿐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믿기에 기도하는 것이고 주님 안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확신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기도가 달라집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예레미야 33장 3절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 시편 145장 18절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들이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녀 되기 원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독일의 화가 스턴벅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돈을 벌고 저녁에 자기 작업을 하는 시간에 성화를 그리곤 했는데,
한 번은 어떤 미망인의 초상화를 그려주게 되었습니다.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하던 미망인은 우연히 반쯤 그려진 성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기 나무에 달려 있는 사람은 죄인인 것 같은데 왜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거죠?”
“예수님을 모르시는군요. 저것은 나무가 아니라 십자가라는 처형도구 입니다.
그리고 저분은 죄인이 아니라 사람들의 죄를 위해 대신 돌아가신 분입니다. ”
스턴벅의 무미건조한 대답을 들은 미망인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당신의 대답을 들어보니 아마 당신의 죄를 위해 돌아가지는 않으셨나 보네요. ”
스턴벅은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는 성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저 작품의 모델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스턴벅은 이 일이 있은 후에 회개하고 성화를 단순한 작품으로 그리지않고 자신의 고백으로 그려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성경의 구원과 약속이 날 위한 것임을 깨달으십시오.
주님,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귀한 보혈을 가슴으로 기억하게 하소서.
주님의 십자가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적어보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