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를 마셔라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영원히 목마르지지 않은 생수가 되시는 주님과 함께 독수리 하늘을 비상하듯 날아오르는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마틴 로이드 존스 박사님의 <생수를 마셔라>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폭력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사람들은 폭력적인 소설과 폭력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이것은 지성보다 더 깊은 그 무엇을 향한 갈망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갈망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폭력이라는 방법으로 갈망을 채우려고 합니다.
축구장의 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거짓 철학에 짓눌렸던 감정이 분출된 결과입니다.
물론 더 좋지 않은 현상이 있습니다.
마약입니다.
사람들은 술로 만족하지 못하고 마약까지 손을 댑니다.
이런 행동에 대해 단순히 흥분하고 불쾌해하며 정죄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술과 마약에 빠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이들이 왜 그러는 걸까? 이 사람들은 무엇을 좇는 걸까?”
대답은 하나뿐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킥’(kick, 흥분, 쾌감)이라 부르는 것을 원합니다.
킥은 감성적 만족을 뜻합니다.
지성과 사고의 영역에서는 이런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인기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그렇게 부르듯이, 감성이 올라와 자신을 나타내려면 뇌를 쓰러 뜨려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모두는 감성과 느낌의 만족에 대한 갈망이 원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도덕을 부정하며 새로운 도덕적 가르침에 눈을 돌리기까지 합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허튼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라.
자신을 해방하라.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만족을 얻어라.
이런 세상에서는 이것만이 중요하다.”
이것을 가리켜 ‘새로운 도덕’new morality이라고 하는데, 때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전파되기까지 합니다.
현대인은 만족을 구하는 외침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외침이 무엇이고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주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가 감성적 만족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주는 모든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마약은 잠시 만족을 줍니다.
약기운이 있는 동안, 황홀함을 느낍니다.
마치 파라다이스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약기운이 떨어지면 상황은 더 나빠지고,
끔찍한 공포가 밀려오며 마치 지옥에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약의 투여량을 점점 더 늘려갑니다.
술도, 쾌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악화시키고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뿐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바로 이런 시대에 삽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해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완전한 만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마약을 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고,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보이지 않고,
가슴에서 감성을 도려내지 않고, 사람을 단지 지적인 기계로 만들지 않고,
메마르고 감동이 없고, 냉정하게 살지 않고도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습니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씀은 완전히 참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6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장17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장12절
우리의 감성과 지성과 사고를 만족시키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날마다 주님을 더욱 찾고 알길 원합니다.
마르지 않은 풍성한 생명수를 제 안에 부어주소서.
생수를 마신 자가 누리는 완전한 만족을 느끼며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은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은 석가의 가르침을 세상에 온전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데 모여
생전에 들었던 석가의 가르침에 대해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들었던 제자들끼리도 내용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누가 맞는지에 대해서 싸우던 제자들은 결국 차이를 인정하기로 하고 대신
남기는 기록물의 시작은 항상“나는 이렇게 들었다”라는 뜻의‘여시아문’네 글자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다들 석가로부터 진리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서로가 깨닫는 내용은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 가르침을 따랐던 제자들은“나는 이렇게 들었다”라고 밖에 고백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경은 다릅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고,
온 천하만물이 하나님으로 인해 지은바 되었음을 증거하며,
각기 다른 저자들은 모두다 성경이 자신이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1,600여년 이란 오랜 시대에 걸쳐 여러 곳에서 쓰여진 여러 기록들이 이렇듯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고 한 분을 나타내기 위해서 엮어졌다는 것은 성경이 진리임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세상의 진리는 오직 성경만 임을 믿고 성경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주님,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진리임을 선포하게 하소서.
구원의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없음을 고백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