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이겨낸 사랑의 찬가-영화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를 보고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963), 그녀의 나이 48세, 그의 인생은 나이답지 않게 깊게 패인 주름살이 말해 주듯 결코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그가 부른 노래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Kegrette Rien) 가 실내에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있었다. 마지막 그의 모습은 그의 삶처럼 불행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환희의 송가가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 주고 있어 외롭지 않았다.
‘아냐, 후회는 없어
아니 아무 후회도 없을 거야
지금까지 받은 친절도 애달팠던 슬픔도
모두 잊어 버렸어..
아냐, 후회는 없어
아니, 아무 후회는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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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노래 첫 가사가 말해 주듯이 노래 속에는 그의 마흔 여덟 해 짧은 인생이 녹녹히 함축되어 있다.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 하면서 그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생명보다 더 소중한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샹송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한번쯤은 귀에 익은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그의 마지막 길에는 두 번째 남편 레오 사라포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사랑에 굶주린 가냘픈 여인 피아프, 열일곱에 결혼하여 딸을 남기고 헤어진 데유몽, 무명의 배우를 세계적 배우로 만들어 놓으니 배신하고 마릴린몬로에게 가버린 이브몽땅, 그 뒤에도 네 명의 남자가 그의 곁에 머물다 멀어져 간다.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복싱미들급 세계 챔피언 마르셀 셀단이다. 뉴욕에서 공연중이던 피아프가 파리에 머물고 있던 셀단에게 보고 싶으니 당장 대서양을 건너오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경비행기를 타고 오다 그만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죽기 때문이다. 사랑한 사람을 일찍이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상심한 피아프는 마약과 술에 빠지고 몸을 버린다.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의 노래 속에는 사랑의 비애가 묻어 있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분명 그 슬픔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 때문에 평생 속을 썩이는 헤라처럼 헤픈 사랑의 굴레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숱한 남자들이 그를 버리고 떠나갔다. 아무도 그에게 머물지를 못했다. 마르셀 셀단 마저 죽음으로 그의 곁을 떠나갔으니 할 말이 없다. 그럴수록 그의 노래는 더욱 성숙해 지고 사람들은 더욱 열광 한다.
셀단이 죽은 뒤, 직접 가사를 쓴 ‘사랑의 찬가’(L'hymne A L'amour), 이브몽땅과 행복했던 시절의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 그리고 그가 죽기 전 병상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한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Kegrette Rien)는 때로는 속삭이듯이 때로는 절규 하듯이 부른다. 상대에게 버림받아 봐야만 상대를 울릴 수 있는 깊음이 묻어나는 것일까, 전 세계인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고 당대의 최고 국민가수로 우뚝 선다.
그의 유년은 참으로 불행한 삶이었다. 할머니가 주방장으로 있던 창녀촌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 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세 살 때 영양실조로 눈이 멀었다가 회복되기도 했다. 열 살 때부터 곡예사인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노래를 부르다 열다섯 살부터 독립하여 조수를 데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의 노래에는 삶의 고통이 진하게 묻어 있다. 그는 가난한 대중 속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노래했다. 피아프의 노래는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었다. 인생의 기복과 숱한 역경이 그의 노래 속에 용해되어 사람들을 마음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노래를 놓지 않았던 피아프의 인생이 그녀가 남기고 간 주옥같은 음악과 함께 스크린을 물들인다. ‘장미빛 인생’ ‘후회하지 않아’ ‘사랑의 찬가’ ‘빠담 빠담’ 등 CD 두 장을 채워도 모자랄 히트 넘버들이 2시간 10분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영화는 그녀의 어린 시절과 가수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 20대, 프랑스 최고 가수로 성공하고 마르셀과 열렬한 사랑을 하는 30대, 술과 마약에 빠져 근근이 버텨가든 40대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 준다.
그리고 삐아프를 연기한 프랑스 배우 마리온 코티아르, 어쩌면 그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 인 것 같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만큼 그녀의 연기는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 2007년에 이 영화가 만들어 지고 그 이듬해에 코티아르는 80회 아카데미 영화제를 비롯하여 세자르 영화제, 영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연거푸 수상 한다.
어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심하게도 그녀의 노래를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오늘 그의 영화를 통해 그녀를 다시 만나고 벅찬 감격에 눈시울 적시었다. 20대 때, 그녀의 노래에 심취해 그녀의 노래를 통해서 나의 젊음이 한층 성숙해 졌는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를 미치도록 좋아했으니까. 영화 ‘라비앙 로즈’는 두 시간여 바람처럼 지나간 그립고 아쉬운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되찾아 주었다.
슬픔과 절망을 이겨낸 사랑의 찬가 ‘라비앙 로즈’ 의 아름답고 감미로운 음색은 지금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