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DH로랜스『아들과 연인』을 읽고

안규수 2013. 7. 9. 12:52



  자전적 소설

  1913년에 출간 된 이 소설은 저자 로렌스의 자전적 소설이며 주인공 ‘폴’은 로랜스 자신이다. 작가 로렌스는 이 소설에서 그와 유대가 깊은 노팅엄셔의 전원과 광산촌을 매력적으로 그려냈으며, 솔직함으로 가족의 미묘한 사랑, 남녀 간의 애정, 성적 관능, 산업화, 가난 같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건드리고 있다.

로랜스의 어머니는 전직교사로 청교도적인 가치관을 지닌 교양 있는 여인 이었으나 한 번의 실연으로 정신적 불안 상태에서 아서 로랜스라는 광부를 만난다. 광부라는 현실감각이 없던 그는 잘 생긴 외모와 호탕한 성격에 반해 그와 결혼하지만 성격과 문화적 지적 수준 차이로 남편과 멀어진다.

 


  아들과 어머니

  이 소설은 처음부터 부모의 가정불화로 인한 비극에서 시작 되었다.

모렐부인은 광부인 모렐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 하지만 중류계급 출신인 그녀는 성격 차이로 남편과 사이가 멀어진다. 남편 모렐은 한마디로 단순무식한 사람으로 변변한 교육조차 받지 못한 광부여서 가족으로 부터 언제나 따돌림을 받는다.

  모렐부인은 장남 월리암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애정을 느끼며 대리 만족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윌리엄은 어머니와 전혀 다른 여인을 만나 육체적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병에 걸려 일찍 죽는다. 윌리엄의 사후 차남인 폴이 어머니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모렐부인은 성인이 된 폴에게 정상적인 모성애 그 이상을 쏟으며 성인이 된 그의 실체를 부정하려 한다.

  폴은 15세 때 월리 농원에서 밀리엄이라는 수줍어하는 처녀를 만나 깊게 교제 한다. 그녀는 모성형의 소녀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란 지적인 여성이었다. 폴은 밀리엄을 자주 만나면서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그러자 모렐부인은 자신만이 폴에게 줄 수 있었든 정신적인 영감과 사랑을 미리엄이 대신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직감하고 본능적으로 미리암을 싫어하고 분노와 질투를 느끼며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한다.

  “폴, 나는 너무 힘들어, 다른 여자는 다 돼도 밀리엄은 안 된다. 너도 알잖니? 폴, 네갠 단 한 순간도 남편이 있었던 적이 없어, 진정으로….”

  어머니의 왜곡된 애정은 폴의 자아 형성에 결정적인 씨앗이 되어서 그의 심적 뿌리가 어머니에게 돌려 지고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줄기와 잎만을 주게 되는 것이다. 폴은 어머니와 관계에서 밀리엄과의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녀와 헤어진다.

  그러나 폴은 곧 육체적이며 원초적인 여인 클라라와 사랑에 빠진다. 유부녀이며 연상인 그녀는 미리엄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녀를 집으로 초대한 어머니는 교제를 허락한다. 클라라는 미리엄에게 있었던 지적 매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관능적이어서 폴이 곧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어머니의 비정상적인 애정과 집착은 결국 그가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과 성숙한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폴에게 만족감, 성취감을 안겨 주던 클라라는 이제 광활한 수평선에 서 있는 한낱 벌거벗은 작은 여인에 불과하여 폴에게 더 이상 의미 있는 존재로 남지 못한다. 그러나 클라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진정성 없는 폴의 태도에서 남편 도스의 사랑을 깨닫고 결국 폴을 버리고 남편 도스에게 돌아간다.

  결국 폴은 어머니에게도, 밀리엄에게서도, 클라라에게서도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된 참된 사랑을 얻지 못한다.

 


  ‘해방’과 ‘버려진자’

  폴의 어머니 모렐 부인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공간이 ‘해방’이다. 폴은 어머니가 죽은 후 엄마라는 혈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으나, 독립하지 못한 채 해방이 됐을 뿐이다. 여기서 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폴은 모르핀으로 안락사 시키는데 현대에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 문제가 당시에 어떻게 받아드려졌는지 궁금했다.

  ‘해방’ 뒤에 오는 마지막장은 ‘버려진 자’이다. 해방은 잠깐이고, 버려진 데에 무게가 실려 있다. 엄마의 죽음 이후 폴은 그의 삶속에 짙게 드리운 엄마의 그림자를 지우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잠시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지만 그 홀가분함은 잠깐이고, 그는 어디에도 마음을 정주하지 못하고 ‘버려진 자’가 되어 더욱 방황하게 된다.

  어찌되었든 어머니가 죽은 후 폴의 생활은 그를 엄습해 오는 어둠과 정신적 쇠약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이제까지 자신의 생활을 지탱해 준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느끼며 더욱 절실히 그녀를 열망한다.

  폴은 교회에서 우연히 미리엄을 만난다. 그녀는 폴과 결혼하고 싶다고, 항상 잊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 한다. 그러나 마음의 정리가 안 되어 있는 폴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 드리지 못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폴은 노팅검 밖의 들에 홀로 서서 어머니를 따라 무덤으로 가기를 원하는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으려고 몸을 돌린다. 즉 폴은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아 성취가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소설 속의 성애性愛

  이 소설이 처음 출간 되었을 때 외설이 문제되어 상당부분이 삭제되거나 수정 되었다고 한다. 성애 장면에 대하여 남자로서 호기심을 가지고 꼼꼼히 읽었더니, 몇 군데 노골적인 묘사가 있었지만 외설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외설스럽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 장면이 예술적 승화를 거친 아름다움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러한 장면에서 가벼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폴이 미리엄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미리엄의 엉덩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는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 그의 존재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불태웠다. 그는 그녀와 잤다. 그러나 어쩐지 울고 싶었다. 그녀를 위하여 무엇인가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이 장면에서 폴은 미리엄과 몸을 섞으면서도 어머니를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클라라와의 관계에서는 좀 더 농도가 짙게 그려지고 있다.

  ‘그녀의 젖가슴은 육중했다. 그는 열매받침에 달린 거대한 열매처럼 그녀의 유방을 한 손에 하나씩 움켜쥐고 두려움에 떨며 거기에 키스했다.’

  ‘강한 가슴에서 올라오는 강한 목과 녹색 천 아래의 젖가슴, 그리고 꼭 맞는 옷에 드러난 허벅지의 곡선, 그녀의 젖가슴에 첫 키스를 하고 그녀의 흰 무릎이 보이자 그는 거기로 내려가서 열렬하게 키스를 했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가 손가락으로 허리를 만지자 다시 경련했다.’

 


  에필로그-‘에디푸스콤플렉스’

  작가는 자신의 청춘의 체험을 통하여, 폴을 중심으로 한 어머니와 미리엄 사이의 사랑의 갈등과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의 심리적 묘사라던가, 두 여자사이에서 갈등하는 폴의 모습을 섬세하게 잘 그리고 있다. 그 섬세함이 때론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소설을 손에서 놓는 순간 그런 부분이 도리어 무거운 감동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번역의 문제인지 작가의 의도적인 언어 선택인지는 모르지만, ‘경멸 한다’ ‘증오 한다’ ‘간주하다’등의 단어가 너무 자주 사용되고 있어서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고 흐름을 끊고 있었다.

  이 소설은 모자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에디푸스콤플렉스’의 주제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자기와 동성인 아버지를 미워하고 이성인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려는 그리스의 신화 에디푸스의 비극적 상황이 소설 속에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는 가정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요즘 엄마는 있되, 어머니는 없는 현실에서 이 소설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엄청나다. 아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무엇 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