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폭풍이 왔다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저는 어제 저녁식사하고 아내와 간단히 산책을 하곤 바로 잠에 빠져들었네요.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잰 해리슨의 <나에게 폭풍이 왔다>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째서 그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를 갈망한다.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나의 ‘왜?’라는 질문 역시 깊은 실망과 슬픔에서 비롯되었다.
제임스의 죽음은, 기도하면서 인생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을 때
내 인생에 펼쳐질 거라고 기대했던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거부하셨는지,
제임스의 죽음이 내 실수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인지 궁금했다.
나는 종종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 위해 성경에 손을 뻗곤 했다.
나는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털어놓았고,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에 친절하고 온유하게 말씀하셨다.
어느 날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신 29:29)
라는 말씀을 읽었다. 그리고 그날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하나님의 길을 계속 비밀로 해두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권이다.
‘왜?’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믿음을 빼앗아가겠다고 위협할 때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라는 말씀을 기억해야겠다.”
지금 “나는 왜 인생의 폭풍을 겪는 중인가?”라는 질문과 의심으로 고심하는 중인가?
그렇다면 그 질문을 계속해서 하나님께 가져가라고 격려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많은 사람들도(욥, 다윗,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왜?’라는 질문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위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궁극적인 응답이시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께서 상심한 사람들의 솔직한 질문을 기쁘게 받으신다고 믿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아갈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답하지 않기로 결정하신다고 해도 나는 더 신뢰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나의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 고통과 아픔을 참으면서 ‘왜?’라고 물으셨다.
마태복음 27장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로마 병사들과 구경꾼들, 강도들과 예수님을 따르던 몇몇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계속 알아보려고 했고,
예수님을 모욕하고 비웃으면서 놀려댔다.
어둠이 땅을 덮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외면하셨을 때 예수님이 크게 외쳐 말씀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why)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성경은 아무 대답도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완벽한 생명이 세상의 죄를 속죄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마 27:50]
예수님은 단념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맡기셨다.
그 순간 ‘왜?’는 죽었다.
여기에서 나는 귀한 교훈을 배웠다.
그리고 이것을 나의 의심의 위기 상황에 적용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하기 전까지, ‘왜?’라는 질문은 올무가 되어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계속 가둬놓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를 십자가에 영원히 못 박아야 한다고 결심해야 한다.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면, 마땅히 가져야만 하는 지식을 가질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인생의 어려움과 투쟁에 대한 설명을 듣기 원한다.
물론 지식은 인생의 많은 일들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꾸는 힘이다.
그러나 영적인 영역에서는 ‘맡김’이 힘이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 시편 139장 16~18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 이사야 55장 8,9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 고린도후서 1장 9절
주님, 제 삶의 문제들을 묻혀두지 않고 '왜'라고 고민하며 나의 짐을 주님께 맡깁니다.
인생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내 마음 깊은 상처를 내려놓길 원합니다.
상한 영혼을 돌보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봄이 온다.
생명의 봄이
내려놓자.
버리자.
잊자.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신 8: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이루려 하심이니라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좋은 방법으로 최대한 많은 돈을 벌고,
모은 것을 최대한 아껴 쓰고,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실제로 책을 통해 번 거액의 인세를 대부분 헌금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가장 크게 성공한 사람 중 한 사람이었지만 돈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이 있는 것은 필요한 일에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아이젠하워는 장군이었지만 모아놓은 돈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자가용도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200만원이 든 돈과 함께 책을 잃어버렸는데,
자신의 필기가 적힌 책을 잃어버린 것을 훨씬 안타까워했습니다.
강철와 카네기는 개인적인 일에는 절대 돈을 낭비하지 않는 구두쇠였지만
교회를 위한 일에 사용하는 돈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기업가 보시와 미국의 부호 워런 버핏은 부자가 되서도
길가에 떨어진 십 원짜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워 저축을 했습니다.
성도들이 돈을 대하는 자세는 세상 사람들과는 조금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질에 지배당하지 않으며 지혜롭게 사용하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한 목적으로 세상의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세상의 물질에 연연하지 않는 자유를 마음에 허락하소서.
지혜롭게 돈을 벌고, 지혜롭게 돈을 사용하는 자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