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신가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고난 주간을 맞아 가족과 함께 가족예배를 드리며 조용히 보낸 지난 밤이었습니다.
내게 시간(개념)은 오직 '오늘'과 '심판의 날' 뿐이라고 한 루터의 고백을 조용히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존경합니다. ^0^
오늘 아침은 그렉 길버트의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선택은 당신 몫이다.
적어도 잠시 동안은!
이것은 수사학적인 말이 아니다.
사실은 왕이신 예수님이 언제까지나 한없이 자비의 손을 내밀지는 않으시리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 어쩌면 멀지 않은 어느 날,
자비의 날이 끝나고 심판의 날이 이를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가 점점 가까워졌을 때,
자신이 어느 날 돌아와 인류를 단번에 영원히 심판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구원과 자비와 은혜의 날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선택이 더는 당신의 몫이 아니게 된다.
당신에게 선택이 내려질 것이며,
내려진 선택은 당신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예수님에게서 영원히 끊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에 지금 답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당신이 최종적으로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분이 당신에 관해,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에 관해
강하고 심지어 도발적인 주장들을 하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분의 주장들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려고 한다면 무엇이든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너는 너를 지으신 하나님을 배반했다.
그분이 네게 내린 판결은 사형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대신하여 그 형벌을 대신 받고 너를 구원하려고 왔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마땅히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아직 예수님을 믿을 준비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준비가 되지 않았는가?
당신에게 다른 어떤 물음들이 있는가?
무엇이 당신을 저지하는가?
이 물음들을 찾아냈다면, 그것들을 외면하지 말라.
점검하라. 추구하라. 자신의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라.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물음은 지극히 중요하다.
이 물음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말라.
당신이 “나는 예수님이 성경이 말하는 그런 분이라고 믿지 않아!
나는 그분이 자신이 주장하는 그런 분이라고 믿지 않아!”라는 결론에 이른다면 어쩔 수 없다.
그 결론도 나름대로 탄탄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심판 때 이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그때 예수님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어야 했어!
그 가르침을 좇았어야 했다고!
시간을 내서 가장 중요한 내 인생의 해답을 찾았어야 했어!”
마지막 날에,
다른 모든 후회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당신이 이렇게 말할 준비가 됐을 수도 있다.
“예, 저는 정말로 예수님이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고난 받는 종이라고 생각해요.
제 자신이 죄인이고 하나님을 배반했기에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예수님이 저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도요!”
그렇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되기란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행해야 할 의식도 없고, 해야 할 특별한 말도 없으며, 실행해야 할 행동도 없다.
그저 죄에서 돌이키고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당신의 구원을 그분께 믿고 맡기면 된다.
그런 후, 세상을 향해 외쳐라!
“예수님은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도!”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태복음 16장 16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로마서 10장 9, 10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 데살로니가후서 1장 8, 9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히브리서 9장 27절
하나님, 나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는 자녀가 될 수 있게 하시고
세상에 나가 예수님을 전하는 자녀 되게 하소서.
우리는 오늘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
죄로 인해 당연히 죽어야할 우리가 오늘 하루도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로 당당하게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그런데 삶의 참 방향과 목적을 잊어버린 채
우리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급급하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고린도후서 5 장 15 절 말씀처럼
“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
이러한 삶으로 하루하루를 주님이 주신 푯대를 향하여 힘껏 달려가시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후 7:7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가수 해리 로더는 공연을 하던 중에
세계 1차 대전에 참전 중이었던 아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이 웃는 얼굴로 공연을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해리는 서둘러 차를 타고 아들의 시신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동시에 병실 안에 같은 아픔으로 슬퍼하고 있는 병사와 유족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해리는 곧 그 자리에 있는 병사들과 유족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최고의 가수였던 해리의 노래를 통해 슬픔에 잠겨 있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해리는 당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난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 저의 슬픔을 맡겼고, 하나님은 놀라운 힘과 위로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저는 다른 사람의 눈물을 위로하길 원했습니다. ”
하나님은 나의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이해하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통 중에도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으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심을 슬픔 중에도 깨닫게 하소서.
슬픔이나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할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