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내 기도를 바꾼 기도

안규수 2019. 1. 16. 12:02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분별을 통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은 멈추고 정리하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열중하자.
 
스스로를 돌아보고 결단이 있는~ 하루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귀족 메디치 가문에 어느 날 한 책이 도착했습니다. 
마키아벨리라는 남자가 쓴 ‘군주론’이라는 책은 당시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줄리아노 데 미디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글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사분오열 되어 있던 이탈리아를 통치하는 이론과 방법을 
역사적인 분석과 통찰로 담은 이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나옵니다.
‘맺힌 원한은 은혜를 베푼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늘 복수를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엄청난 모욕에 대해서는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 안 듣는 민중은 
때때로 완전 없애 버릴 각오로 다루어야 한다.’ 
냉철하게 순전히 권력을 잡는 방법들로만 채워진 이 책은 정작 메디치가 죽고 난 뒤 점점 유명해져서 
오늘날에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군주론’과 같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죽기 전에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칸의 생애’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은 ‘군주론’에 담은 자신의 내용들을 후회하며 
그렇게 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이자 유작입니다.
 
이기주의와 약육강식의 논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리가 아닙니다. 
잘못된 처세와 세상의 법칙을 따르다 후회하지 말고 말씀이 가르치는 삶의 방식을 따라가십시오. 아멘!!
 
주님,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을 멀리하는 삶에는 후회뿐임을 기억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잠언 16장>
 
1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
2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님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
3네가 하는 일을 주님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4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으니, 악인은 재앙의 날에 쓰일 것이다.
5주님께서는 마음이 거만한 모든 사람을 역겨워하시니, 그들은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
6사람이 어질고 진실하게 살면 죄를 용서받고, 주님을 경외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
7사람의 행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의 원수라도 그와 화목하게 하여 주신다.
8의롭게 살며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살며 많이 버는 것보다 낫다.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10왕이 내리는 판결은 하나님의 판결이니, 판결할 때에 그릇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11정확한 저울과 천평은 주님의 것이며,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분이 만드신 것이다.
12왕은 악행을 하는 것을 역겨워하여야 한다. 공의로만 왕위가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이다.
13왕은 공의로운 말을 하는 것을 기쁘게 여겨야 하고, 올바른 말하기를 좋아하여야 한다.
14왕의 진노는 저승사자와 같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왕의 진노를 가라앉힌다.
15왕의 얼굴빛이 밝아야 모두 살 수 있다. 그의 기쁨은 봄비를 몰고 오는 구름과 같다.
16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낫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다.
17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이 가는 큰길이니, 그 길을 지키는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지킨다.
18교만에는 멸망이 따르고, 거만에는 파멸이 따른다.
19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
20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 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21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을 명철하다 한다. 말이 부드러우면, 더욱 많은 지혜를 가르친다.
22명철한 사람에게는 그 명철함이 생명의 샘이 되지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그 어리석음이 벌이 된다.
23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신중하게 하고, 하는 말에 설득력이 있다.
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
25사람의 눈에는 바른길 같이 보이나,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
26허기진 배가 일하게 만들고 그 입이 사람을 몰아세운다.
27불량한 사람은 악을 꾀한다. 그들의 말은 맹렬한 불과 같다.
28비뚤어진 말을 하는 사람은 다툼을 일으키고, 중상하는 사람은 친한 벗들을 이간시킨다.
29폭력을 쓰는 사람은 그 이웃을 윽박질러서, 좋지 않은 길을 가게 한다.
30눈짓을 하는 사람은 그릇된 일을 꾀하고, 음흉하게 웃는 사람은 악한 일을 저지른다.
31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
32노하기를 더디 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점령한 사람보다 낫다.
33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

 

 

<오늘의 칼럼: 날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자- 이동원 목사님> 

 

바울은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분별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빌 1:10
 
이 구절의 ‘분별’(dokimazo)이란 단어는 위조 화폐를 구별할 때, 
혹은 당시에 유행하던 도자기가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사랑이 건강한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분별의 삶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분별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이란 단어는 바울 당시 그리스의 철학자들에 의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최고선’ 혹은 ‘지고선’(summum bonum)을 뜻합니다.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은 ‘최고의 선’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견해는 달랐습니다. 
그는 우리가 분별해야 할 최고의 선이 무엇이라고 여겼을까요? 로마서 말씀을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수 있는 
분별력을 계속 구하십시오.
구하면 주십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분별해야 할 ‘최고의 선’이 
‘하나님의 뜻’, 곧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건강한 인생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빌립보서에서도 그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면 마음에 새로운 소원이 생깁니다. 
그것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한 소원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구절은 제가 청년 시절에 인생의 모토로 삼았을 만큼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야말로 최고의 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보고 붙들고 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또한 10절에는 ‘진실하다’, ‘허물이 없다’라는 두 단어가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분별하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가 진실하여 허물없는 인격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이러한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 분별을 통해서만 우리의 인격은 진실하고 허물없는, 주님을 닮은 인격으로 성화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실하다’라는 말은 ‘내적으로, 섞이지 않은 단순성’을 의미합니다. 
진실한 사람은 속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단순합니다. 
또한 ‘허물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외적 행동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외적으로도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행동해야 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 즉시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은 완전한 인격에 도달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적어도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다른 사람에게 시험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내 인생의 ‘최고선’으로 수용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유일한 동기로 인생을 살고자 하면 진실하고 허물이 없는 인격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날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을 통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은 멈추고 정리하면 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열중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많이 부른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I have decided to live according to your will.
No turning back.
 
이 찬양의 가사처럼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기도를 바꾼 기도. 이동원 / 규장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시편 119장 105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 고린도전서 2장 13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디모데후서 2장 15절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옵소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집중하게 하시고 소망을 붙잡고 나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