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

안규수 2020. 2. 9. 12:51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세계를 선택하고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생명)

영원한 지옥(저주)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한근영님의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어머니, 기억하시지요?
북촌 바닷가 둑방에 서서 하염없이 물살을 훑었던 그 겨울의 새벽을요.

조업을 나갔던 아버지의 배가 돌풍을 피해 북촌으로 찾아들다 포구 앞에서 침몰했다는 소식에, 
어부들은 해녀들을 풀어 행방불명 된 아버지를 찾아 나서도록 했지요. 
겨울 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지만 저는 저 차디찬 바다 어디쯤에 옹송그리고 계실 
아버지를 찾아 제 가난한 외투나마 덮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새벽 물속을 헤엄치던 해녀들은 간혹 둑방으로 올라와 말하더군요. 
캄캄한 바닷길에서 시체를 찾는 게 섬뜩해서 더는 못하겠다고. 
그 말에 저는 ‘우리 아버지인데’라고 생각하며 바닷속으로 직접 뛰어들고만 싶었습니다. 
내가 무서웠던 건 아버지를 잃는 것이었을 뿐, 
캄캄한 바닷길쯤은 얼마든지 쳐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희미하게 동터오던 그 새벽, 
어머니와 저는 아버지의 싸늘한 주검을 안은 채 속절없이 통곡해야만 했습니다. 
해가 떠올라 추위는 분명 잦아들었음에도 이가 덜덜 떨리고 외투를 자꾸만 포개게 된 건 그때부터였어요. 
어린 날 나의 놀이터였던 바다가 시커먼 죽음의 이미지로 채워진 것도, 
평화롭던 나의 잠길이 두려움의 미로 속에 갇혀 버린 것도 아마 그날 이후 어디쯤부터였을 거예요.

어머니의 잠길은 어떠셨나요?

그 새벽을 함께 보낸 가족으로서 어리석은 질문이란 걸 너무도 잘 압니다. 
어린 내가 잠 못 이룰 때 제주바다 시름겨운 어머니의 잠길이 어떠했을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2년 반 뒤에 기적처럼 찾아온 제 잠길 안의 평안을 맛보며 
한시도 어머니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어머니의 잠길도 평안해질까?’

대학 졸업을 1년 앞둔 1992년 3월 중순, 
기독학생회에서 하는 철야기도회에 나설 때도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와 찬양을 한다는 말에 무슨 기도를 그리 징하게 하냐며 거절해도 
“딱 한 번만 가보면 좋겠다” 하는 후배의 간곡한 요청에 못 이겨 나선 길이었어요.

버스에 오르고서도 마음엔 어머니 생각. 
그러다 문득 제가 서 있던 자리 앞 좌석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께 눈이 머무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아직 쌀쌀한 삼월의 추위를 가리기엔 턱없이 얇고 남루한 그 분의 차림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검은 눈동자 색깔이 하얗게 바래버린 할아버지의 눈빛 안에 담긴 
인생의 허망함을 그 찰나에 나도 모르게 읽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민초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투쟁에 동참하자”라는 
학과 선배들의 권면을 따라 집회에 몇 번 나섰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목 놓아 외쳤던 그런 일들이 
과연 이 할아버지에게 얼마만한 도움이 되었나 돌아보게 되었지요. 
물론 그런 일들이 다 헛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많은 몸부림이 할아버지의 눈빛과 어머니의 거친 잠길을 
평안으로 바꾸어 놓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그 순간 찾아들었던 것입니다.

아…. 짧은 탄식이 나오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누가 하지? 누가 어머니의 잠길을, 
이 할아버지의 눈빛을 평안과 생명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지?’

그냥 맘속으로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때 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음성을 난생 처음 들었습니다.

“내가 한다.”

푸념처럼 던진 질문에 답이 돌아오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습니다. 
그랬기에 “내가 (그 일을) 한다”라는 답을 듣자 이런 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란 것을 즉시 알아차렸습니다. 
그건 정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내 생각도, 누군가의 설교를 듣다가 깨달아진 사실도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그 음성을 듣고 온 우주의 비밀이 한순간에 풀리는 듯 
인생에 대한 의문 하나가 풀렸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구원이시다.

‘아, 하나님이 하시는군요. 하나님이 찾아오셔야 사람의 영혼이 평안으로 바뀌는 거군요. 
지치고 노곤한 사람의 눈빛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야 
생명의 빛을 머금을 수 있군요. 하나님을 만나는 게 먼저였어요.’

어머니. 철야기도회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저는 이미 그 버스 안에서 인생의 답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의 잠길을 하나님이 잠잠케 하셨듯 어머니의 잠길도 
하나님께서 종내는 잠잠케 하시리라는 소망으로 제 가슴이 터질 듯했습니다.

어머니. 이 온 우주에 내게 단 한 분뿐인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 한근영 / 규장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장 27절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편 23편 2절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시편 42편 1절

하나님, 세상이 주는 평안과 안식은 참된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공허와 혼돈뿐입니다. 
지치고 힘든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을 허락하소서. 
주님만을 만남으로 참된 안식과 생명을 얻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남태평양의 나우루 공화국은 인구가 약 1만 명 정도인 작은 섬입니다.
철새도래지인 이 섬은 강수량이 적어 늘 가뭄이었고 
부지런히 일을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 이후 이 섬에서 희귀물질인 인광석이 발견됐습니다. 
매장량이 워낙 많아 나우루 공화국에는 엄청난 돈이 흘러들어왔는데 
이 때 이 돈을 모든 국민에게 나눠주는 파격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집, 의료, 교육, 모든 것이 무료였고 1년에 1억 원씩 국민에게 돈을 나눠줬습니다. 
용산구 정도 크기의 작은 나라지만 사람들은 
수십억짜리 스포츠카를 탔고 해외에 갈 때는 전용 비행기를 타고 나갔습니다.
몇 백 미터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고, 
집안의 모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와 시킬 뿐 아니라 공무원까지도 외국에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우루를 풍요롭게 만든 인광석은 점점 떨어져갔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지 않았고 나라에서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데 
결국 2003년에 인광석은 모두 고갈됐고 사람들은 기름값이 없어 차를 거리에 버릴 정도로 빈곤해졌습니다. 
풍부한 자원으로 세계 최고의 부국이었던 나우루 공화국은 이제 세계 최빈국 중 하나가 됐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안락함에 빠져 신앙을 점점 소홀히 하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진짜 중요한 것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진정한 축복임을 기억하십시오. 아멘!!

주님! 물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며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소서.
지금 누리는 풍족함이 혹시 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가능성을 생각해봅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