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안규수 2021. 6. 8. 09:54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간구에 적지 않은 오해가 있다.

‘시험에 들다’라는 표현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마치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거리를 던져주시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점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약 1:13,14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시험하시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통해 시험하셨다고 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신 8:2

 

이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독생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시며

그를 시험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창 22:1

 

더 나아가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전제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 시 17:3

 

여기서 우리는 질문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 모순이 있는 것인가?

한쪽에서는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하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 궁금증은 ‘시험’이라는 단어를 정의함으로 다소 해소되리라 생각한다.

원어 ‘페이라스모스’(peirasmos)는 ‘trial’(본질, 정체, 본심, 능력을 평가하다)과

‘temptation’(유혹, 유혹하는 것)이라는 두 요소를 동시에 지닌 매우 복잡한 단어다.

 

그렇기에 여기서 이 복잡성을 다 파헤치고 소화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가로지르는 조직신학을 기반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동기와 생각과 본심 등을 잣대질(시험)하시지만,

우리를 유혹(시험)하여 죄를 짓게 하지는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분이시다.

그리고 혹시 우리에게 부족하거나 연약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주님은 우리를 연단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실족하도록 덫을 놓으시는 분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간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본성을 점검하거나 확인하지 말아달라는 뜻이 아니다.

혹은 우리가 연단을 피해가게 해달라는 요청도 아니다.

이 간구는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우리는 늘 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

눈과 귀와 생각과 마음과 같은 통로를 통해 끊임없이 죄는 우리 안으로 침입하려 한다.

그리고 행동과 입술을 통해 우리가 죄를 범하게 한다.

죄는 이렇게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지게 한다.

 

죄의 목적은 우리를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파괴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임무가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과

우리가 시험을 피하는 것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첫 번째 간구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우리의 존재 이유의 선포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다.

 

그리고 이 기도는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임무와 책임을 소개하면서 마무리된다.

바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는 간구의 첫 번째 의미다.

 

-주님 기도, 다니엘 김 / 규장

 

† 말씀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물며

내가 주의 날개 아래로 피하리이다

– 시편 61편 4절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니다

– 시편 39편 7절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 시편 59편 16절

 

† 기도

하나님, 늘 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저입니다.

눈과 귀와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십시오.

행동과 입술을 통해 죄를 범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유혹에 넘어져 죄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죄의 유혹을 물리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전도서 5:1-9

 

● 전 5: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중국 기 나라에 걱정이 많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푸른 하늘을 지켜보다가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친구는 하늘이 공기가 쌓여서 떠 있는 것이며

아무리 숨을 쉬어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걱정이 많은 남자는 또 지혜로운 친구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하늘은 그렇다 치고 해와 달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지혜로운 친구는 “해와 달이 작게 보이는 것은 저 멀리 있기 때문이며

수천 년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남자는 다음날 또 찾아와 이번엔 ”땅이 꺼지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습니다.

친구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남자의 걱정은 끝이 없었습니다.

결국 남자는 한평생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중국 고서 ‘열자’에 나오는 이 이야기가 ‘기 나라 사람의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뜻으로 ‘기우’의 어원입니다.

주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세상의 불안과 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진리의 복음이 내 삶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족함과 걱정을 알고 살피시는 주님을 믿으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삶을 채우십시오. 아멘!!

 

주님! 걱정과 불안이 아닌 주님이 주시는 마음을 품게 하소서.

모든 걱정과 염려를 주님께 맡기며 사명을 향해 전진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