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어느 순간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안규수 2021. 8. 20. 18:46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코로나19로 다들 삶이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은 스스로 근신할 수 있는 기간이다. 

딴짓할 수 없게 다 막혔다. 

코로나19 확산기에는 노래방이나 PC방에도 갈 수 없다.

 

지금이 말씀을 가까이하기 좋은 환경이다. 

지금처럼 기도할 수 있고 또 예배드릴 수 있는 시간이 또 언제이겠는가?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담당 교수님이 휴강을 했는데 강의를 해달라고 조르겠는가? 

시험에 대비할 시간이 생겼으니 오히려 좋을 것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못 읽은 성경을 읽고, 더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지 못한 부분을 준비해서 다시 잘 살아갈 기회를 주신 것 같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분별력은 눈과 귀에서 시작한다. 

어떤 삶이 미혹되겠는가?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눈과 귀가 향해 있을 때 우리는 미혹에 빠진다. 

신자는 성경이 말하는 징조 외에 다른 것을 너무 많이 알아서도 안 된다. 

그렇게 아는 것이 도리어 사탄이 미혹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다. 

마지막 때 회당이나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가더라도 하나님이 할 말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다. 

어떤 사람이 이런 준비가 되어 있겠는가?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킨 사람만이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게 된다.

 

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가? 

그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말씀에 눈을 두라는 의미이다. 

이것이 영적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이다. 

사탄은 계속 우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한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우리의 마인드와 기준이 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성경공부가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기준이 말씀이며 말씀에서만 진리가 나올 수 있다는 고백이다.

 

내가 힘든 청년의 때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돌아보니 사실 아주 간단했다. 

나는 20대 초반, 환난이 닥쳐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성경을 미친 듯이 보았다. 

온종일 5,60장 넘게 본 적도 많다. 

그렇게 하루이틀이나 며칠만 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말씀을 보았다. 

그러면서 성경의 능력을 경험했다.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던 시절이었다. 

얼마나 많이 피웠는지 냄새만으로 담배의 종류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담배를 끊었다가 1년 반 만에 다시 피우고 말았다.

 

환난이 다가오면 우리는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기가 쉽다.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에 반응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다시 그 길로 가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보지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아온 삶으로 나를 지켜가는 것이다.

 

나는 환난이 오자 습관을 좇아 다시 담배를 피웠다. 

하루에 두 갑을 피우면서도 아예 끊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을 때였고 교회 갈 때는 피우지 않았지만, 내가 담배를 끊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내게 물으셨다.

 

“남국아, 나 믿니?”

 

“그럼요, 믿죠!”

 

“그럼 내가 준 이 말씀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봤니?”

 

나는 순간 당황했다. 

성경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그냥 넘어간 부분도 있어서 다 읽었다고 말하기에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하고 끝낸다는 심정으로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레위기는 정말 읽기 힘들었다. 

레위기를 읽기 전에 담배를 피우고, 읽고 나서 피우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나오면 또 피우면서 힘겹게 레위기를 읽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편 말씀을 읽으며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시 119:103)라고 고백하며, 

어느 순간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그 길로 담배를 끊었고 말씀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럴수록 예전에 끊지 못한 것들이 끊어지기 시작했고, 예전에는 할 수 없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내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의 능력 때문이었다. 

나는 은혜 안에서 강해졌고, 내 안에 여러 가지 변화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 성경을 본다. 

성경을 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힘들면 누군가를 찾아가 상담을 하듯이 나도 하나님을 찾아간다. 

그러나 너무 힘들 때는 아무리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도 어렵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은혜받은 말씀, 읽기 쉬운 말씀, 청년 때 은혜받고 줄 쳤던 말씀을 계속해서 본다. 

그 말씀이 다 은혜였고 읽다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분별력이 생기고 은혜가 생긴다.

 

-준비하고 있으라, 김남국 / 규장

 

† 말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시편 119편 103-105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 히브리서 4장 12, 13절

 

† 기도

하나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에 눈과 귀가 향해 미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말씀만이 저를 강하게 하고 변화시킴을 압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읽으며 은혜받고 그 안에서 참 자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읽을 말씀 : 마가복음 12:28-34

 

서울의 한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람이 붐비는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한 할머니가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화상을 심하게 당해 성한 곳이 없으셨던 할머니는 

다 떨어진 신발을 그것도 한 짝만 신고 구걸을 다녔지만 사람들은 핸드폰만 쳐다보며 외면했습니다.

노약자 배려석을 지나 다음 칸으로 이동하는 할머니를 갑자기 다른 할머니가 붙잡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내 신발을 신고 가요. 돈을 드리고 싶은데 나도 드릴 게 없어.”

노약자석에 앉아 계시던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구걸하는 할머니에게 신겨주고는 도착한 역에서 내리셨습니다.

신발을 벗어준 할머니는 도와줄 여력이 없으셨기에 신발이라도 벗어주고자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본 많은 사람들은 충분한 여유가 있음에도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남을 도울 여력이 있다면 눈치 보지 말고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의 의무이며 주님의 명령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각박하게 살아간다 해도 성도들은 사랑으로 세상을 적셔나가야 합니다.

나만 알고, 효율만 추구하는 각박해져 가는 이 세상에서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도우십시오. 아멘!!

 

주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소서.

조금 손해 보고 때로는 당하더라도 마음을 열고 이웃들에게 손을 내밉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