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복음은 누군가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누리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규수 2023. 4. 3. 14:53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사실 목회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큽니다.

어려운 교우들의 사정이 한둘이 아니고, 교회도 문제의 연속이고, 
골치 아프고, 때로는 두렵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죽었음을 받아들이니까 정말 편안했습니다. 
목회하면서 지고 있던 교회 걱정이 다 사라지고 
제 안에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너무나 감사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가 예수님보다 목회를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내 목회를 잘하게 해주시는 분이고, 설교도 잘하게 해주시고, 
교회도 빨리 부흥시켜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목적이 아니라 목회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제 생각이 뒤집혔습니다. 
복음은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누리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회도 주님이 하시고 나는 주님을 따라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울었습니다. 
비로소 질서가 제대로 잡혔습니다.

예수님이 내 모든 것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니까 제가 목회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것만 따라가면 되니까 정말 편안합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다시 사는 것을 실제로 깨닫고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일을 하는데 예수님이 그 일에 조장이시고, 
여러분은 따라가기만 한다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담임목사인 저를 바라보며 따라오는 교인들의 마음은 갈등도 고민도 많겠지만,

예수님이 담임목사라면 교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편하겠습니까?

정말 그만큼 행복한 교인도 없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에게도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 후로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어떤 유혹이 오거나, 시련이 오면 저는 “나는 죽었습니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 스트레스, 답답한 일, 억울한 것, 속상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주님이 앞장서 가시고 저는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문제를 다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이 믿어졌습니다. 
저를 통해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기쁨이 저에게 부어졌습니다.

여러분, 정말 중요한 진리를 꼭 붙잡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가족 문제 역시 주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드리면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계획을 다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도구로 쓰임 받으면 됩니다.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에게, 부모님이나 자녀에게 오늘부터 ‘예수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하고, 주님이 행동하게 하는 대로 행동하고, 
걱정과 염려는 주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냥 주님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살자, 유기성

† 말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 시편 16:11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 시편 119:77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 시편 119:50

† 기도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찬양처럼 주님과 즐겁게 살기 원합니다. 
주님 너무 걱정에 짓눌려서 지쳤습니다. 
주님 이 모든 일에 주님이 개입하셔서 즐겁게 하는 것을 배우게 하여주시옵소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주님을 구합니다. 주여 오시옵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서로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암 전문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두 친구가 진찰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고 수술 성공률도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항암 처방만큼은 성공률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한 친구가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며 비결을 물었습니다.
“자네나 나나 같은 약을 처방하는데 왜 내 성공률은 20%밖에 되지 않고 
자네의 성공률은 70%나 되는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자네는 환자들에게 약을 주지만 나는 희망을 주거든.”
“그게 무슨 소린가?”
“우리가 처방하는 약 이름은 하이드록쉬리아(Hydoxyurea), 온코빈(Oncovin), 
플라티눔(Platinum), 에토포사이드(Etoposide) 네 가지인 경우가 많네. 
대부분의 의사들은 약 이름을 그대로 써서 처방하지만 나는 앞 글자만 따서 
‘이 약이 당신의 희망(H.O.P.E.)이 될 것입니다’라고 처방하거든. 차이가 있다면 그것뿐일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 잭 캔필드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절망하게 되고, 절망의 결과는 죽음뿐입니다.
‘희망’ 한 글자에는 모든 역경을 이겨낼 큰 힘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소망이 되사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주님으로 인해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품으십시오. 아멘!

주님, 최악의 순간에도 주님이 주시는 희망을 품고 이웃을 섬기게 하소서.
희망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주님의 마음으로 위로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