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천 줄기 바람이다/안규수
봄은 희망이다. 세상은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숨을 죽이고 낙엽을 떨군 채 움츠려 있던 나무가 꽃도 피우고 새싹이 움튼다. 젊어서는 무심한 것들이 나이 들면서 이전과는 달리 세상의 조화가 모두 아름답고 신비스러워 자연법칙이 오묘하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어느 스승 아래 제자 둘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경쟁의식이 있어서 사사건건 의견이 충돌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말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네.”
그러자 다른 제자가 정색하며 말했다. 아니다 그저 나뭇가지가 움직일 뿐이다. 이렇게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스승이 조용히 말했다.
“지금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나뭇가지도 아니다. 바람이 불고 있는 곳은 마음속에 움직이고 있는 너희들 마음이다.
중국 고사에 전해오고 있는 이야기이다. 무슨 일이든 마음이 문제다. 정작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드러남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깊이’라고 했다. 그런 시간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시간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는 마디가 있고 굴곡이 있다.
나는 시간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정보화시대라지만 요즘 인생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시간 병’에 걸린 걸까? 누구나 공평하게 가질 수 있는 건 시간이다. 시간은 나를 그악스럽게 거머쥔 채 흐른다. 새벽인데 금방 저녁이고, 월요일인가 싶더니 어느새 토요일이다. 하지만 시간의 속도에는 차이가 있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은 어떤 자원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얼마 전 고교 동창 친구가 한밤중에 심정지로 그만 삶을 끈을 놓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가 가기 사나흘 전 전화를 걸어와 5월에 한라산을 오르자고 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라지만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저리 훌쩍 먼 길을 떠나다니, 꿈을 꾸듯 믿어지지 않는다. 과연 남기고 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음은 누구나 거스를 수 없고, 생사生死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만남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나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즐겨보는 야구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 야구에서 높은 타율을 자랑하는 선수는 타석에서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날아오는 공을 최대한 오래 바라보면서 방망이를 휘두른다. 공이 포수 장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투구가 어디로 오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
요즘 나는 TV에서 방영되는 <나는 자연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출연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복잡한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삶에 실패하고 병을 얻어 산으로 들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산속에서 홀로 지내면서 도시에서의 실패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의욕을 보이는 것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자기 내면을 확충할 수 있기에 대체로 만족도가 높다.
나는 산속은 아니지만 숲이 있는 작은 도시에 산다. 오늘은 누구를 만날까 생각하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 만나자는 전화가 없어 좋다. 때때로 도회지에 사는 아들딸들이 보고 싶으면 전화 너머 목소리를 듣는 걸로 만족한다. 그렇다고 나는 정녕 혼자가 아니다. 다만 내면으로 많은 사람, 가족과 교감하고 있으며 자연과 소통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새 세월의 강을 흘러 희수喜壽의 산언저리를 넘어와 있다. 주위로부터 소외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외로움이 스며든다. 이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나는 자주 여행을 떠나 제주 곶자왈 ‘치유의 숲’을 즐겨 찾는다. 생명의 시원始原은 숲이 아닐까. 숲이 내는 바람 소리, 방울새, 개똥지빠귀, 곤줄박이 같은 산새들의 합창과 계곡 물소리는 고요가 깊어서 명상의 삼매경에 빠진다. 명상은 영혼에 자유를 주고 속세의 티끌을 씻어준다. 이는 시간의 결핍 속에서 느끼는 우수憂愁의 해방감이 있고, 인생의 허무를 치유해 주는 설렘의 기이한 빛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숲에서 머무는 한나절 내내 나는 이 자연의 찬가에 푹 빠져 지낸다.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는 말이 있다. 나이 드니 이 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나는 이제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있다. 커피를 즐겨 마신다. 진하고 쓰지만, 코끝을 스치는 그윽한 향이 좋다. 커피는 낙조의 광휘光輝처럼 맛은 쓰지만 진한 향기를 발산한다. 나는 그런 향을 풍기는 노년이길 소망해 본다. 가벼운 몸으로 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훨훨 나는 새가 되고 싶다.
덧없는 인생을 인디언들은 ‘천 줄기 바람’이라고 했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천 줄기 바람’이란 멋진 말로 표현한 그들의 지혜는 절대 자연에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는 삶이었다. 단순한 삶에 만족하는 게 앞으로 남은 인생의 덕목이다. 이제 시간을 넘어 불어오는 ‘천 줄기 바람’을 맞으며 모든 것을 비우고 홀가분하게 천천히 미지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