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빈 벽 /정호승
안규수
2015. 3. 10. 08:50
빈 벽
벽에 걸어두었던 나를 내려놓는다
비로소 빈 벽이 된 벽이 가만히 다가와
톡톡 아버지처럼 내 가슴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준다
못은 아직 빈 벽에 그대로 박혀있다
빈 벽은 누구에게나 녹슨 못 하나쯤 운명처럼 박혀 있다고
못을 뽑으려는 나를 애써 말린다
지금까지 내 죄의 무게까지 견디고 있었던 저 못의 일생에 대해
내가 무슨 감사의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벽에 걸어놓아야만 벽이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스러져 보이지 않는 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캄캄한 내 눈물의 빈방에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비치는 것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 어둠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빈 벽이 되고 나서 비로소 나는 벽이 되었다